고려아연 2.5조원 규모 유상증자 후폭풍…주가 연이틀 급락

2024-10-31 13:00:09 게재

최 회장 측 “건강한 주주기반 확대해 국민기업 거듭나겠다”

금융투자업계 “주주가치 희석 우려 … 주주환원 명분 상실”

MBK·영풍 가처분 소송 전망 … 법원·금융당국 판단 주목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최윤범 회장 측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전격 발표했다. 고려아연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통해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려아연 주가는 유상증자 공시 직후 하한가로 직행했고 연이틀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초대형 신주발행 계획으로 인한 주주가치 희석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일반주주들의 경우 막대한 손실 위험에 직면했다. 이에 금융투자업계 등 시장에서는 그동안 최 회장 측이 밝혔던 주주가치 보호, 주주환원의 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MBK파트너스·영풍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등 추가 대응책과 법원의 판단, 금융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1주당 가격 67만원 … 더 낮아질 수도 있어 =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일 오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본사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373만2650주에 대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자금조달 목적은 채무상환자금 2조3000억원, 시설자금 1350억원 등이다. 고려아연은 우선 이번 총모집 주식 중 80%에 대해 일반공모를 실시하며 나머지 20%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할 방침이다.

또한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모든 청약자에 대해서는 그 특별관계자와 합해 총 모집 주식 수의 3%인 11만1979주 내에서만 배정할 방침이다.

1주의 모집가액은 67만원으로 총 모집액은 약 2조5009억원에 달한다. 67만원은 이달 22~24일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에 따른 기준 주가 95만 6116원에서 30% 할인율이 적용한 잠정 가격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금액이다. 주가가 최근 과열된 점을 고려할 때 내달 29일 모집가액이 확정될 때까지 주가가 하락하면 신주 가격도 67만원보다 대폭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발행가액은 청약일 전 3거래일부터 5거래일까지의 가중산술평균주가(총 거래금액을 총 거래량으로 나눈 가격)를 기준주가로 하고, 발행 공시 규정 한도에 따라 할인율 30%를 적용한 금액을 발행가액으로 책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또 “국가기간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고려아연이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시행한다”며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 일반 국민 등 다양한 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소유 분산을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반공모 증자를 통해 공개매수 이후 특정 주주들에게 지분이 집중되어 지속적으로 분쟁이 야기될 수 있는 상황을 타개함으로써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인한 국내 산업생태계 교란과 공급망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경영권 방어에 활용 “우리사주 통해 우군 확보 전략” = 하지만 시장에서는 최 회장 측이 이번 증자 결정은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이 대세다. MBK·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우리사주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이번 증자가 진행되면 MBK와 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까지 희석된다. 최 회장과 우호 백기사 베인캐피탈의 합산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기존 40.4%에서 33.5%까지 줄어들지만 신주를 확보한 우리사주물량 3.4%가 최 회장 편을 들면 의결권 지분율은 36.9%까지 증가한다. 고려아연 측은 유상증자 청약 한도를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1인당 11만주로 제한해 MBK와 영풍 측이 유증에 참여하는 방안도 차단했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이번 유상증자 방안이 최 회장 측의 지분 열세를 뒤집을 수 있는 묘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주주가치 훼손과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자충수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MBK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유상증자 결정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며, 최윤범 회장 및 이사진들에게 끝까지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MBK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나설 전망이다. 만약 법원이 다시 고려아연 손을 들어줘 유증이 진행된다면 MBK는 신주발행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법원의 판단이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주주들 돈으로 빚을 갚는’ 유상증자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고려아연이 이번 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2조5000억원 중 2조3000억원(92%)을 채무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앞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고려아연은 2조6000억원의 빚을 떠안기로 했는데, 이번 증자를 통해 확보하는 자금 대부분을 신규 투자 등이 아닌 빚 갚는 데 사용하면서 주주환원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자사주 공개매수 종료 전부터 차입금 상환을 위한 유상증자를 준비해 온 정황도 향후 분쟁의 새로운 불씨가 될 전망이다. 공개매수가 이뤄지고 있는 시기에 유상증자를 진행한 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 회장 측의 주주환원 명분이 퇴색되고 주주들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지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지적으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금융당국 유상증자 계획 제동걸까 = 금융당국이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걸지도 주목된다. 금융감독원은 31일 오후 함용일 부원장 주재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 자본시장 현안에 관한 브리핑을 진행한다.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 검토, 불공정거래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고려아연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라며 “투자자 보상 문제, 증자 가격 산정 방식 등을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려아연 주가는 전날 하한가에 이어 31일 장 초반 16% 급락 중이다. 이날 전일 대비 20.07% 하락하며 시작한 주가는 한때 23.22%로 낙폭을 키워 83만원까지 떨어졌다가 오전 9시 16분 기준 전날보다 16.13% 내린 90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종가 87만6000원을 기록한 이후 5거래일 연속 상승해 29일 역대 최고가인 154만3000원까지 올랐으나, 전날 하한가를 기록한 데 이어 연이틀 급락세로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가가 펀더멘털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높은 변동성을 이용해 큰 수익을 볼 수도 있겠지만성공적인 매매 여부에 따라 반대로 큰 손실을 볼 확률도 높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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