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고금리 여파 등 취약한 부문 돌발적 상황 고도의 경계감”
이복현 원장, 금융상황 점검회의 … “미 금리인하 국내 상황 불확실성 여전히 커”
금융회사 건전성 강화 등 내실 강조 … 우리금융, 보험사 M&A에 영향 미치나
기업신용위험평가 변동 요인 … 코인 시장 요동에 “시세조종 등 무관용” 경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금융회사의 내년 경영계획 초점을 건전성 강화에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공격적인 영업과 투자를 자제하라는 의미에서다.
8일 금감원은 미국 대선과 FOMC 결과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이 원장은 “미 연준이 정책금리를 인하(25bp)하였으나, 국내 금융상황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므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리스크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며 “그간 누적된 고금리 여파 등으로 취약한 부문에서 돌발적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고도의 경계감을 가지고, 비상상황을 가정한 대응계획에 따라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금융회사에 대한 ‘과도한 외형성장 지양’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이 원장은 임원회의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만 이때는 우리금융그룹을 직접 겨냥했다. 당시 이 원장은 “우리금융의 내부통제와 건전성 관리 수준이 현재 경영진이 추진 중인 외형확장 중심의 경영이 초래할 수 있는 잠재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지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은 현재 금감원 정기검사를 받고 있다.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 인수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기검사에서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 결과가 3등급 이하로 나오면 동양·ABL생명을 인수하기 어렵게 된다. 금감원 검사결과가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합병(M&A)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 원장이 다시 한번 ‘외형 확대’를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기업 신용위험평가에 영향 미치나 =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부실징후 기업을 가려내는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신용위험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금감원은 채권은행을 통해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평가결과(A~D등급)에 따라 부실징후 기업을 선정해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원의 회생절차를 통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 원장은 “미국의 산업정책 변화, 친환경 정책축소 등에 대비해 업종별 신용리스크를 점검하고 기업들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연말 자금수요, 기업 및 금융사의 신용등급 변화, 퇴직연금 이동 등 금융권 자금이동 증가 가능성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국내 조선·건설 산업은 수혜를 입겠지만 자동차·2차전지 산업의 위험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신용위험평가 세부평가항목에는 사업위험(산업위험, 영업위험, 경영위험)이 포함돼 있고 채권은행들의 정성적 평가가 진행된다. 산업위험은 해당 산업의 기본적 위험요소에 대한 판단을 주제로 전반적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정책적 변화에 따라 산업위험이 커지는 분야가 발생할 수 있고 이 같은 영향이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토대로 내달 부실징후 기업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들썩이는 코인시장, 시장 감시 강화 = 트럼프 당선인이 가상자산(코인) 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입장이라서 코인시장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7만5000달러를 넘어섰고 10만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을 가상자산 수도로 만들고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보유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따라서 코인에 대해 기존의 증권법이 아닌 시장 친화적인 규제체계가 새롭게 도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코인 시장에서도 비트코인은 8일 오전 1억400만원을 넘어서 거래가 되고 있다.
이 원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관련 테마주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변동성 확대에 대한 시장 감시를 강화하고, 풍문의 생산·유포 및 선행매매,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정황 발견 시 무관용으로 엄중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최근 가상자산시장 불공정거래(시세조종) 혐의를 포착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검찰에 사건을 통보했다. 법 시행 이후 시세조종을 노리는 세력들이 일단 몸을 사리고 있지만, 최근 코인 시장이 들썩이면서 그 틈새를 노리고 불공정거래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부실PF, 부실채권’ 속도감 있게 정리 = 금감원은 또 부실 PF사업장과 2금융권의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이 원장은 “PF부실이 큰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구체적 개선계획을 징구·점검하는 등 부실PF 정리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정상화 가능 사업장은 신디케이트론 등 PF 신규자금 공급을 통해 원활한 주택공급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대출 증가와 관련해서는 “내년에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점진적으로 하향 안정화될 수 있도록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관리계획을 면밀히 수립하고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관행이 확립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