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 2기, 외교안보팀 확 바꿔라
미국 대선 개표 결과 공화당 트럼프 후보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보도를 접하며 ‘안도감’과 동시에 ‘불안감’이란 양가적(兩價的) 감정을 느꼈던 것은 필자만이 아닐 터이다.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윤석열-김정은의 무모한 대결로 증폭된 한반도전쟁 가위눌림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는 게 안도감이라면, 미중 대결 격화와 사이에 낀 우리에게 닥쳐올 트럼프의 폭압적이고 거친 경제적 압박이 불안감의 근원이다.
‘미국 우선주의’ 적용 대상에서 동맹국이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공언은 ‘머니머신’으로 지목된 우리에게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요구로 당장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안도감과 불안감 교차하는 한반도 … 북미 정상회담 재개 여부 초관심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외교안보분야 최우선순위는 단연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이다. 트럼프의 그동안 발언과 기질로 볼 때 종전은 시간문제다.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이 끊기면 우크라이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떨어지고 결국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종전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전쟁 종전 추진은 1만여 명 병사를 파병한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순위에서는 밀려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재개는 초관심분야이자 매력적인 과제다. 두 사람은 트럼프 1기 때 이미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에서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개인적으로 크게 충돌하거나 삐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가 마감됐다.
물론 북한 비핵화를 놓고 줄다리기 하던 5, 6년 전과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북한은 당시보다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을 뿐 아니라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도 발전했다. 더구나 러시아와 밀착해 동맹관계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조약’을 비준하고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엊그제 각각 서명할 만큼 대외환경이 호전됐다. 북한의 우크라이나전쟁 파병은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공격받을 경우 러시아의 개입을 ‘공증’하는 약속어음 구실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북한이 굳이 미국과 정상회담 재개에 나설 이유가 없다. “핵보유국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 “이미 많은 핵무기를 가졌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과거 김정은에게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관람을 제안한 바 있다”고 한 트럼프의 그간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바탕에서 협상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발상을 전환해 ‘북한카드’를 적극 활용할 수도 있음을 내비치는 것 같다.
가장 난감한 처지에 몰린 것이 윤석열정부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부했던 트럼프 당선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괴로운 악재로 여겨질 것이다. 그동안 ‘자유의 북진’ 대북강경책을 펴며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올인 해온 처지에서 진퇴양난이다. 동맹국을 결속하며 ‘가치외교’ ‘이념외교’ 깃발을 든 바이든 대통령의 선봉장을 자임했던 ‘도박’이 무위로 돌아가고 나름 기대했던 큰 그림이 송두리째 망가졌다.
북미간 협상이 진행된다면 우리는 사실상 배제돼 속수무책 지켜만 봐야할 옹색한 처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섣불리 방해하려 들다간 따가운 눈총과 외교적 따돌림이 우려된다.
‘가치외교’ ‘이념외교’에 과몰입해 국익 도외시한 근시안 외교안보팀
미국우선주의를 내걸며 거칠게 몰아붙일 게 뻔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이념’ ‘동맹우선’을 되뇌며 항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재빨리 표변해 적응하거나 ‘실리외교’로 전환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실세로 군림해온 현 용산 외교안보팀의 편벽된 속성이나 능력을 볼 때 그런 유연성 발휘는 기대조차 하기 힘들다.
김태효 1차장은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외교안보 참모진을 공개석상에서 폄하하면서 당선되면 “내가 외교안보 참모들을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황당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트럼프 외교안보 참모진에도 한수 가르치겠다고 나설 것인가.
주한미군 주둔과 전략자산전개 등 확장억제 약속을 압박카드로 쓰며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트럼프 정부에 “주한미군이 북한 남침을 막기 위해서 있는 것이냐. 중국을 견제하며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주둔하는 것 아니냐”고 논리적으로 당당히 대응할 결기라도 있을까. 지지율·신뢰도 바닥으로 국정수행 능력이 거덜 난 터에 미국의 과도한 요구와 거친 압박을 국민세금으로 어떻게든 때워보겠다는 얄팍한 심산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의구심이 앞선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