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삼성전자 인사에 거는 기대

2024-11-14 13:00:05 게재

삼성전자 인사가 주목된다. 삼성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의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쇄신 프로그램이 없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바닥 모르고 하락해 ‘5만전자’도 위협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 있을 이번 인사는 어느 때보다 혁신과 변화의 흐름이 반영돼야 한다는 게 삼성 안팎의 목소리다. 이 회장도 이번 인사에서 경영철학과 방향을 보여줘야 하는 처지다. 삼성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시중에서는 이 회장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금융 전문가는 “최고경영자가 어떤 전략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지 못하는 회사에 투자할 수 없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 회장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면서 한 말이다.

최근 시중의 단골 화제 가운데 하나가 삼성전자 위기다. 삼성전자 주식 투자자는 물론이고 삼성전자와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도 이 회장 입과 행보에 신경을 쏟는다. 그것은 삼성전자의 위기가 대한민국의 위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전략과 목표를 보여주지 못하면

2022년 4월 경제단체들은 기업인들 사면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사면의 핵심 대상은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장기적이면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오너경영이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전문경영인보다 위기상황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요청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가석방상태여서 삼성전자 경영에 관여할 수 없고 해외출장을 갈 수도 없었다. 발이 묶인 상태로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이 사면복권 요구의 중요한 이유였다.

이 부회장은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그해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또 지난 2월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직 항소심 등 상급심 재판이 남아 있어서 사법리스크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2년 전과 비교해 경영활동에 제약이 거의 없는 상태다.

최근 여당은 반도체업계의 요청사항 중 하나인 직접 보조금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여당은 11일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조성 등 3대 분야에 보조금 지원 근거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했다.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한해 주52시간 근무제를 예외 적용하는 ‘화이트칼라면제’ 규정도 포함됐다. 선보조금 지원은 인프라 투자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바로 지원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도체산업 지원과 관련해서는 야당 입장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 회장은 고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때와 회장 취임 2주년을 맞은 날에도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 이달 1일 열린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행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와 달리 최근 다른 주요그룹 총수들은 활발한 경영활동에 나서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4일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중들 앞에서 직접 SK가 보유한 인공지능(AI) 역량과 글로벌 파트너십에 대해 50분간 강연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일본 토요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나 협력을 논의하는 등 글로벌 광폭행보를 이어갔다.

위기에 빠진 삼성전자 메시지는 창립 55주년에 한종희 전영현 두 부회장이 내놓았다. 임직원 모두 사활을 걸고 본질적인 기술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삼성그룹 고위임원 중에는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500일 넘게 복역하고 매주 1~2회 재판일정을 치렀다”며 “지금껏 견딘 것만도 놀라운 일”이라고 옹호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리더십 부재에 대한 변명치곤 부족하다.

첨단기술기업 걸맞는 리더십 보여줄 때

삼성전자는 첨단기술기업이다. 첨단기술기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개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핵심역량으로 삼는다. 현실을 유지하는 재무적·관리형 경영전략은 한시적으로 유용하지만 위기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변화를 촉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전현직 삼성전자 임원들은 사업지원 TF팀의 제동으로 의사결정은 늦어지고 기술·현장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를 낸다. ‘삼성은 잘 짜여진 조직이지만 관료화돼 창의가 숨쉬지 못한다’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고심이 현 상황에도 유용해 보인다.

이 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혁신과 쇄신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해외 출장 중에 휴대폰 충전기를 찾으러 직접 호텔 로비로 나온 소탈함에 더해 ‘변화를 읽고 기업 전략과 목표를 제시하며 실행하는 리더십’을 이번 삼성전자 인사에서 구현하길 기대한다.

범현주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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