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던’ 용산전자상가를 아시나요?
용산구 역사박물관에서 기획전시
문헌·주민기억 담은 보고서 펴내
“그때는 휴대전화가 돌도끼 수준이었죠. 그걸 들고 다녔어요.” “다들 그랬죠. 삐삐도 기억나네요.”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이 웃음소리와 주고받는 대화로 떠들썩하다. 박희영 구청장과 인근 한강로동 주민 등이 전시실을 순회하며 ‘그때’ 기억을 소환하느라 분주하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열광했던 국산 게임기’를 기억했고 다른 이는 즉석 사진기와 전자사전을 떠올리며 한마디씩 보탰다. 모두 인근 용산전자상가가 지나온 흔적이다. 박 구청장은 “전자상가 바로 뒤편에 살아 청과물시장이던 시절부터 자주 드나들었다”며 “지금까지 변천과정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30일 용산구에 따르면 구는 내년 9월 7일까지 용산역사박물관에서 ‘접속, 용산전자상가’ 기획전을 이어간다. 청과물시장에서 전자상가로 변모하고 1990〜2000년대 전성기를 거쳐 10여년 전부터 침체기에 이르게 된 과정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구는 “우리나라 전자제품 상권 중 최고 명성을 떨친 용산전자상가 특유의 문화와 전자제품 유행 흐름을 다양하게 연출하고 관련된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획전은 용산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전문 학예사들 연구가 토대가 됐다. 박물관은 지난 2022년 3월 개관한 이래 2023년부터 변화하는 용산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와 각종 이야기가 쌓인 장소를 선정해 잊혀져 있던 과거를 재조명하는 ‘용산 역사문화 자료조사’다. 역사를 비롯해 건축 인류 민속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를 통해 복합적인 도시사를 심층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 첫번째 주제가 전자상가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다방면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국가기록원부터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등 협조를 받아 각종 문헌 사진 지도 등을 확인하고 전자상가 실측조사와 상인·이용자가 기억하는 모습을 더했다. 특히 이용자들 기억 속 전자상가는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개장 직후 방문했다는 50대 시민은 ‘깔끔하고 휘황찬란한 모습’에서 ‘미래시대’를 떠올렸다. 2010년대에 상가를 찾은 경기도 주민은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곳들’을 기억했고 최근 방문한 60대 여성은 텅 빈 상가에서 “1990년대의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고 했다.
전시는 300쪽 가까이 되는 역사문화보고서 축소판이다. ‘만초천 물길이 흐르던 자리’ ‘전자제품은 용산으로’ ‘우리들의 용산전자상가’ 3개 소주제로 공간을 나누어 구성했다. 천변에서 청과시장으로, 다시 현대식 상가로 변모하며 전자상가가 형성되고 국내 대표 전기·전자상가로 자리매김하는 과정부터 들여다 볼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개인용 컴퓨터와 이동통신 기기, 오락기 등은 ‘용산전자상가에 없는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당시 판매하던 제품들이다. 상인과 소비자로 붐볐던 그때 이야기는 영상에 담았다. 컴퓨터 게임 대명사였던 ‘스타크래프트’와 한글 타자연습 ‘한메타자’는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전시실 곳곳에는 증강현실을 접목해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985년 양곡도매시장이 이전하면서 조성된 상가가 1990년대 대호황을 맞아 한국 전자산업 거점으로 변모한 용산전자상가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라며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연계한 신산업 융·복합지구로 또다시 역동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용산전자상가를 함께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