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②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서
정치초보 윤석열 트라우마…“대통령후보 검증 강화” 88.5%
차기 대통령 선택기준, 준법성·도덕성·경륜 등에 무게
충분한 자질 갖춘 지도자 원하지만 현실은 ‘차악 선택’
12.3 불법계엄으로 최고지도자에 의한 민주주의 위기를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에 대해 더욱 깐깐한 기준을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생애 처음 공직선거에 출마한 정치경력 8개월 대통령을 선출했다가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를 겪고 나서 얻은 학습효과 또는 트라우마가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검증 강화 필요성에 동의한 응답자가 10명 중 약 9명(88.5%)에 달했다. 검증 강화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7.1%에 그쳤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000명 대상으로 100% 자동응답전화방식으로 실시됐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2%p다.
검증 강화 필요성에 동의하는 비율은 전 계층에서 80% 안팎을 차지하는 등 높은 동의율을 보였다. 연령별로는 50대(92.9%)와 60대(91.9%), 지역별로는 호남(93.4%)과 대구·경북(90.3%)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념 성향별로는 진보층 91.1%, 중도층 90.0%, 보수층 83.9% 순으로 나타났다.
깐깐해진 유권자들의 차기 대통령 선택 기준은 뭘까. 헌법과 법률을 잘 지킬 사람(96.7%), 도덕성과 청렴성이 검증된 사람(93.7%), 글로벌 경제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외교적 경륜과 협상력을 갖춘 사람(97.5%) 등의 기준을 제시한 결과 세 기준 모두 90% 이상의 동의율을 얻었다. 리서치뷰는 “정치지도자들의 법치 훼손과 자질 논란에 따른 헌정 중단이나 혼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더 능력 있고, 더 검증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망이 절실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다양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재들을 양성해 더 좋은 대통령 후보, 더 나은 정치 지도자를 배출할 의무가 있는 정당의 역할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으로는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가 꼽힌다. 여야를 막론하고 적극적 지지층에 휘둘리면서 국민 다수의 이익보다 당파적 이익에 더 몰두하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이는 합리적 성향의 정치 지도자들의 입지를 좁히고 극단적 성향의 지도자들에게 더 넓은 자리를 내주는 경향이 있다.
유례 없는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검증된 정치지도자를 원하는 국민들의 희망이 강해져도 실제 선거에선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한국 정당의 약화에 대해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는 “독재성향을 감춘 아웃사이더를 걸러내는 것이 국민이 부여한 정당의 책무라면, 여야 정당은 앞장서서 가장 중대한 책무를 버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결국 대한민국이 지금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정치 초보 대통령을 뽑은 대가로만 여길 게 아니라 수년에 걸쳐 심화된 정치적 양극화, 이에 따른 정당정치의 약화, 틈새를 파고든 대중선동가적 성격이 강한 정치인들의 약진 등 한국 정치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