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낮은 트럼프 ‘가자구상’ 왜?

2025-02-06 13:00:02 게재

극우세력 반발 진압과 아랍국가 참여 노림수 … 중동 전체 판 흔드는 전략적 발언

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일부를 수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집트와 요르단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이곳을 장악하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4일(현지시간) 발언이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나 이집트, 요르단은 물론이고, 많은 아랍 국가들과 국제사회도 거센 비난과 함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정치권에서도 우려와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 정책을 사실상 지지하고 지원하는 위험천만한 구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가자구상은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료들도 마찬가지 견해를 보이고 있다.

5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과테말라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접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철거 후 재건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는 공화당 상원의원들과의 비공개 오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미군을 배치할 생각이 없으며, 미국 예산을 전혀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의 가자구상과 폭탄발언의 진의가 다른 곳에 있음을 시사한다.

같은 날 이스라엘 매체들도 전날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의 의미와 여파를 다룬 해설 보도를 쏟아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트럼프가 가자지구의 뱀들을 놀라게 하려고 중동에서 풀을 때리고 있다”면서 “그가 발언한 것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는 중동에서 ‘풀을 건드리는’ 제안을 내놨다”라며 “그의 급진적인 정책을 본 역내 일부 국가들이 가자지구 사안에 더 솔직하게 접근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지난 약 20년간 국제사회의 관여가 줄어든 사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통치권을 장악하며 분쟁이 악화했는데, 이런 국면을 뒤집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진짜 의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루살렘포스트는 “가자지구 사람들이 이주하면 하마스는 그들을 인간방패로 쓸 수도, 인도적 지원을 착취할 수도 없게 되며, 유엔의 여러 일자리도 위험에 빠지고 비정부기구도 자극받을 것”이라며 “가자지구의 폐허로 이득을 얻던 모든 국가와 조직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트럼프의 가자 계획은 실현되지 않더라도 역내를 확실히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며 “15개월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견딘 가자 주민 대다수는 망명 생활을 원치 않으며, 트럼프는 200만 명 가까운 인구를 가자에서 몰아내기 위해 미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군다나 이집트, 요르단 등도 난민 유입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 구상에 동참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 계획은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띄운 것만으로도 위험과 기회가 함께 찾아온다”고 짚었다. 일단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제안을 실행에 옮기자는 극우파 압박이 높아지며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고, 하마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상에 대응해 인질 석방을 중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또 하레츠는 “트럼프는 미국이 가자를 장악한다는 비실용적이고, 이해할 수 없고, 불법적인 계획으로 네타냐후를 함정에 빠뜨리고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며, 몇 주 뒤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고 짚었다. 하레츠는 특히 “트럼프의 백악관 쇼에서 네타냐후는 소품이었을 뿐”이라며 “인질을 버리고 목표 없는 전쟁을 재개해 정부를 살리거나, 합의대로 휴전 2단계로 넘어간 뒤 연립정부를 잃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매체들 외에도 알자지라 역시 장문의 해설기사를 통해 트럼프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가자선언을 왜 했는지에 대해 다뤘다. 중동 정책 분석가인 재스민 엘가말은 알자지라에 “도널드 트럼프를 정신 분석하려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트럼프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트럼프가 말했듯이 ‘세계의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곳에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완전히 환상”이라면서도 “아랍 입장에서는 실제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알자지라는 이번 트럼프의 발표는 이스라엘의 극우 세력(가자지구에 대한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요구해 온 세력)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을 지지한 데 대한 분노를 풀어주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가자 재건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아랍 국가에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휴전에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 내부의 극우세력을 단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자사태에 대해 주로 관망하던 아랍국가들의 물적·인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종교와 역사, 에너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사회 전체를 향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가자구상에서 보듯 트럼프는 상식을 벗어나는 구상과 발언을 통해 기존 질서와 판을 흔들고 긴장감을 불어넣어 본인과 미국 주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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