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1⑮ 비금도 그림산길
“고종황제보다 먼저 샴페인 마신 섬 사람들”
2024년 5월 11일 신안 비금도에서 ‘샴막 예술축제’가 열렸다. 샴막이라니 대체 이 생소한 이름은 무얼까? 샴페인과 막걸리다.
비금도 사람들은 고종 황제보다도 먼저 프랑스산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던 역사가 있다. 1851년 서해에서 고래잡이 중이던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좌초돼 비금도 해변으로 표류해 왔다. 이때 들어온 선원 29명 중 6명이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남은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상하이 프랑스 영사 몽타니와 함께 비금도로 돌아왔다.

그들은 선원들의 안위를 걱정했었지만 선원들은 비금도 사람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몽타니 영사는 떠나기 전날 주민들에게 샴페인과 와인을 대접했고 비금도 사람들은 막걸리와 음식으로 보답했다. 축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열렸던 것이다.
조선 정부는 서양인들과의 접촉을 금했지만 섬에는 누구보다 먼저 세계와 교류 했던 역사가 있다.
비금도는 바둑 천재 이세돌의 고향이자 겨울 시금치의 대명사인 섬초의 본고장이다. 비금도에는 백섬백길 43코스인 그림산길이 있다. 상암마을을 시작으로 그림산과 투구봉, 죽치우실재, 선왕산을 넘어 한산마을로 이어지는 5.7㎞의 산길이지만 험준하지 않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여름 비금도의 특산물이 천일염이라면 겨울 특산물은 섬초다. 섬초는 브랜드화를 통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고, 호남지방의 천일염은 비금도가 그 시초다.
박삼만은 강제징용으로 일본인이 운영하던 평안도의 귀성염전에 염부(鹽夫)로 일하며 천일제염법을 배웠다. 해방 이후 고향 비금도로 돌아와 1946년에 손봉훈 등과 함께 수림리 앞 화렴터에 염전을 만들었고 이것이 호남 최초의 천일염전이었다.
장작불을 때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만드는 전통 방식의 화렴은 비용도 많이 들고 생산량도 적었다. 그런데 천일염이 생산되면서 염전은 섬사람들의 큰 소득원이 됐다. 그 덕으로 현재는 신안군에서 한국 소금의 70%가 생산된다.
1980년대부터 비금도 인근 섬사람들은 시금치를 상업적으로 재배했는데 비금 농협에서 1996년 3월 ‘섬초’로 상표 등록을 하면서 시금치 매출이 급증했다. 브랜드의 힘이기도 하지만 겨울 노지에서 찬바람을 견디고 자란 섬 시금치의 달고 고소한 맛이 도시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비금도에는 신라 말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고운(孤雲) 최치원이 발견해 가뭄을 해결해주었다는 천년의 샘도 있다. 비금도 수대리 야산 정상에는 있는 고운정이다.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섬사람들은 “간이 딱 맞고 혀에 착 붙는 맛”이라 평한다. 비금도는 한국영화 감독 중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강대진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마부’가 1961년 제11회 베를린 영화제 특별 은곰상을 받았다. 강 감독은 ‘마부’ 외에도 ‘박서방’ ‘흐느끼는 백조’ 등 30년 동안 47편의 영화를 남겼다.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이끈 첫 번째 공로자다. 이 땅 최초로 샴페인과 와인이 들어왔고 또 한국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을 배출했고,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벌였던 이세돌의 고향인 비금도를 어찌 변방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바다를 통해 세계로 열린 섬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