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전쟁’선점 중국에 미국 선전포고
임박한 희토류 위기 … 트럼프, 핵심광물 중국 의존도 줄이려 우크라이나-그린란드에 눈독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일찌감치 희토류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은 이른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의 기치를 내걸면서 ‘죽의 장막’을 활짝 열어제쳤다. 중국은 이때부터 희토류 투자를 크게 늘렸다.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의 가치에 일찌감치 눈을 뜬 것이었다.

20세기가 ‘석유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희토류전쟁'의 시대다. 세계 각국은 희토류를 비롯한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희토류는 땅속에 있는 희소금속으로 란탄 계열 15개 원소에 스칸듐과 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를 총칭한다. 희토류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전자장비를 사용하면서부터다. 희토류는 스마트폰과 전기차, 반도체용 연마제, 석유화학 촉매, 전투기, 미사일 등 첨단산업에 사용되는 필수소재다.
중국은 희토류 경쟁에서 단연 선두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부존량은 4400만t에 달한다. 이는 전세계 희토류 부존량(약 1억1582만t)의 38% 규모다. 생산량 기준으로 중국이 전세계 희토류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희토류 원소의 정제 및 가공에 집중투자를 한 결과 현재 글로벌 가공 용량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광물자원 전문가인 키스 베로니즈 박사는 저서 ‘금속전쟁’을 통해 “중국의 채굴가능한 희토류 자원의 가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의 모래사막 아래 묻혀 있는 석유 가치에 맞먹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중동에 오일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 있다”
중국의 발 빠른 움직임에 놀란 서방국들도 앞다퉈 핵심 광물자원 투자와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그린란드 등의 희토류를 탐내고 있다. 독일은 1996년 이후 줄곧 폐쇄됐던 남서부 케퍼슈타이게 광산을 다시 열었다. 호주정부는 주요 광물에 대한 13개 프로젝트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일 ‘왜 트럼프와 서방은 희토류를 중시하는가’라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FT는 중국이 세계 광물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난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핵심광물정보센터(CMIC) 부국장인 피에르 조소(Pierre Joss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희토류를 정제하고 개별 원소로 분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면서 “세계 어디에서나 희토류를 채굴할 수 있지만 제련 및 정제를 위해서는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의 이사인 그레이슬린 바스카란은 “우리는 오랫동안 이것이 전략적 취약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장과 운송 등 중간처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너무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임박한 희토류 위기"
천연자원 분석가인 데이비드 S. 에이브러햄은 저서 ‘희토류전쟁’에서 “중국과 경쟁하려는 신규 희토류 업체들이 수억달러를 들여 새로운 시설에 투자하더라도 중국의 생산자들은 놀리고 있는 생산라인을 언제라도 가동해 국제시세를 떨어뜨릴 수 있다”면서 “신규 광업기업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운용 비용을 두고 중국과 경쟁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서방국의 우려는 깊다. 그 우려는 201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미국 자성재료협회는 "임박한 희토류의 위기"를 경고했다.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이 미국 경제와 안보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희토류는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등 산업제품뿐 아니라 미사일과 전투기 등 첨단무기에도 필수적인 요소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방은 여전히 중국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USGS에 따르면 미국은 희토류 수입 물량의 7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는 희토류 자석의 98%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희토류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와 추출기술 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희토류를 ‘자원무기’로 활용하며 희토류에 대한 규제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2023년 12월 희토류 가공 기술수출을 금지했고 지난해 10월 ‘희토류 관리 조례’를 발표했다. 중국은 서방과의 무역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희토류 수출제한 카드를 꺼내든다. 2010년 중・일간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이 불거지자 중국은 대일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다. 그 결과 희토류 가격이 40% 이상 급등하는 등 전세계 공급망에 일대 혼란이 일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무대에도 희토류는 ‘주연’으로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다시 대미 희토류 수출통제를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희토류 확보 문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6일 ‘트럼프와 바이든이 어떻게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광물에 집중하게 되었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얼마나 고심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1기 때인 2017년 12월 ‘핵심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연방 전략’이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2020년 9월에는 ‘적국 핵심 광물에의 의존과 그로 인한 국내 공급망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핵심광물 공급망을 추진했다. 우크라이나와 그린란드, 캐나다도 포함된 공급망이었다.
NYT는 “지난해 가을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에 서명하기 직전까지 갔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잠정적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 기업이나 동맹국 기업이 계약에 입찰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리드타임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때부터 우크라이나와 그린란드, 캐나다의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의 언어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공격적이고 거칠었다. NYT는 “해외 광물자원 탈취가 트럼프 대통령 외교의 핵심 목표”라면서 “취임 이후 트럼프가 잇달아 제국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배경”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외교의 핵심은 광물탈취”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재정 지원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 지분의 50%를 요구했다. 우크라이나에는 철 망간 우라늄 등 100여종의 자원이 매장돼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광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USGS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는 상업적 매장량에 미치지 못한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 역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희토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는 활성 광산이나 개발 중인 매장지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큰 무례라고 할 정도로 그린란드와 캐나다에 눈독을 들인다.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 그린란드를 향해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부유하게 만들고, 그린란드를 상상하지 못했던 높이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미국 편입 의지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G7(주요7개국)의 일원인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합병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최근 한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의 광물에 꽂혀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를 합병하겠다는 위협은 실제적인 것”이라고 우려했다.
글로벌 희토류전쟁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은 희토류를 필요로 하는 첨단제품 수출로 먹고 산다. 희토류전쟁은 한국에도 ‘발등의 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은 희토류 금속 80.0%, 희토류 화합물 65.4%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미중간 공급망 싸움의 불똥이 우리에게 튈 수도 있다.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비축량도 늘려야 한다. 그러자면 하루속히 내란 정국을 수습하고 나라의 리더십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누가 우리의 광물외교를 거들떠나 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