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어선위치 육지에서 8㎞ 더 멀어져…초동 대응 어려워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빅데이터 분석
기후·바다 변화 반영한 안전대책 시급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이 지난해 침몰한 어선들의 사고 위치를 분석한 결과 2023년에 비해 8㎞ 정도 더 육지에서 멀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어선들이 조업을 위해 더 먼 바다로 나가고 있다는 게 데이터분석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김준석 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지난 10일 공단의 올해 주요업무 추진현황을 설명하면서 “기후와 어장환경 변화 등으로 어선들이 더 먼 바다로 나가고 있다”며 “바다에서 8㎞ 거리는 선박으로 3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인데, 먼 바다에서 사고가 나면 구조를 위한 해양경찰 등의 초동 대응도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사고,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안전 = 공단이 기자들에게 업무현황을 설명하던 날에도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34톤 규모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바다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사고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해상사고는 구조작업의 어려움 등으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예방활동과 사고 후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

공단은 해양사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단기대응과 장기대응으로 동시에 추진 중이다.
단기적으로는 공단의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MTIS)의 ‘우리선박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한 출항 전 자율안전점검 지원,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에 맞춰 조업할 때도 불편하지 않게 활동성을 개선한 벨트형 구명조끼 연구·보급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공단이 해양수산부와 함께 2022년 개발한 벨트형 구명조끼는 벨트처럼 허리에 착용하는 것으로 활동할 때 편리하다. 물에 빠지면 벨트주머니에 있는 구명조끼가 팽창한다. 공단에 따르면 수온 13℃인 바다에 빠졌을 때 일반인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 정도지만 구명조끼를 착용하면 이 시간이 1시간 가량 늘어나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공단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인명피해가 발생한 해양사고를 분석한 결과 해양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자 213명 중 187명(81%)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어선의 경우 81.8%, 상선 등 비어선은 85.2%였고 수상레저기구는 58.3%로 나타났다.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준병(더불어민주당. 전북 정읍시·고창군) 의원은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어선안전조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이사장은 “고체식 구명조끼는 크기가 크고 착용한 채 작업하기 불편해 어선에서 잘 사용하지 않아 이를 개선한 팽창식을 개발·보급하고 있다”며 "팽창식 구명조끼는 보급만 하면 안되고 보관위치 부품교체 등 관리도 잘 해야 한다. 공단이 구명조끼 관리를 맡아 추적·관리하는 방안도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팽창식 구명조끼는 전량 유럽과 중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국산화해서 저렴하게 보급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어선에 적용되는 규제를 변화하는 바다환경과 조업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작업을 정부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어선이 무게중심을 잃고 전복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복원성 검사 대상을 확대하는 것에 맞춰 준비를 하고, 불법 건조 개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선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어선은 측면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작업 형태로 돼 있어 강풍이 불고 파도가 거친 날 조업을 하다 무게중심을 잃고 전복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부는 지난해 길이 24m 이상 어선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복원성 검사 기준을 20m로 확대하는 방침을 정했지만 관련 법안 개정이 늦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도 어선사고가 잇따르자 현장에서는 복원성 검사 대상을 12m(5톤) 이상으로 확대하자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1~2명이 타고 주로 연안에서 조업하는 5톤 미만 어선을 제외한 모든 어선은 복원성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악화된 기후여건을 견딜 수 있게 선형을 개발하고 복원성 검사 기준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이런 기준이 현장에서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게 어선 톤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톤수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현장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어선에 복원성을 강화하려면 톤수나 길이를 더 늘리거나 어구를 싣는 공간이나 물고기를 보관하는 어창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2013년 해양수산부 부활 이후에도 톤수 규제를 어선 길이 기준으로 바꾸는 안을 시도한 적 있지만 연근해 업종의 갈등으로 중단되고 표준어선이 대안으로 나왔지만 현장에서 받아 들이지 않아 한계가 생겼다”고 말했다.
◆젊음·전문성·현장력 바탕으로 1300만명 안전 책임 = 1979년 어선협회에서 시작, 지난 2019년 7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역할을 확대한 공단은 어선을 포함한 국내 10만여척의 선박을 검사하고 여객선 안전운항을 관리하고 있다.
해양교통 안전진단, 해양교통체계 개선, 해양교통안전에 대한 교육·방송·기술개발 등 육지의 교통안전공단(국토교통부) 도로교통공단(경찰청) 도로공사 등이 하는 역할을 바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산업안전공단의 역할과 비슷한 어선원 안전보건관리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정부 업무를 위탁받아 집행하는 역할을 넘어 연구개발 국제업무 등을 통해 ‘안전한 바닷길’을 만들기 위한 정부 정책수립도 지원하고 있다.

공단은 해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지속적으로 보완해 가고 있다. 시스템을 구축할 때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서 제공하는 사고정보 하나로 시작했지만 이후 연관 정보를 하나씩 연계해서 현재는 연관된 9개 기관에서 제공하는 186종의 데이터를 연계해 종합 분석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해역에서 과거에는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알려주는 것은 물론 미래 해양사고 위험에 대한 예보도 ‘낮음’부터 ‘경계’까지 네 단계로 표시해 전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기상특보 발효일수가 연평균 14% 상승했고, 2023년 1610건에서 지난해 1901건으로 18.1% 증가해 기상악화와 해양사고 발생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것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지난해 3월 어선 전복·침몰 사고로 사망·실종자가 28명 발생한 때는 기상특보 발효 건수가 2023년보다 2.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 어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공단은 여객선 안전관리에도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전국 53개소 여객선 운항관리 지역에 73개의 지능형 CCTV를 설치해 실시간 영상분석으로 여객선 입·출항 지연과 해양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13일에도 인천 해상에 황사와 짙은 안개가 겹치면서 시계확보가 어려워지자 공단 인천운항관리센터는 인천항 여객 14개 항로 여객선 17척 중 ‘백령~소청항로’ 운항 여객선 한 척을 제외하고 운항 대기령을 내렸다.
드론을 활용한 3차원 맵핑(mapping) 기술을 도입해 항로와 접안지 안전점검을 고도화하고, 미확인 장애물 탐지와 항만시설 변화도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공단은 기상데이터와 승선 인원 정보를 수집하고 실시간 관리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국민이동편의를 높이고 불편은 줄이기 위해 연안여객선 운항정보를 하루 전에 제공하는 ‘내일의 운항 예보’는 섬을 여행하는 관광객과 섬주민들에게 예측가능성을 높여 여행과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내일의 운항예보 서비스 누적 이용횟수는 서비스를 시작한 2023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42만회에 이른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에 가입한 수는 3만6000명 수준이다.
공단은 지난해 기상예보사 등 기상전문인력 10명을 채용해 기상예측정보와 태풍 등의 기상정보를 운항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올해는 풍향·풍속계, 시정계 등 항로별 기상관측 인프라를 확충하고 전문관리인력 양성을 통해 해양기상 측정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여 안전운항관리 업무도 고도화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1일 공단의 ‘연안여객선 교통정보 국가중점 개방 데이터’에 대해 데이터 품질 인증에서 최고등급인 ‘A’등급을 부여하기도 했다.
공단은 젊어지고 전문성이 강화되고 있다. 공단 전체 직원의 평균연령은 39.2세로 전체 공공기관 직원 평균 41.6세보다 2.4세 어리다. 김 이사장도 55세로 공공기관장 평균 61.2세보다 젊다. 이들은 전국 18개 지사와 2곳 출장소, 12개 운항관리센터 등 32개 현장조직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공단 현장조직은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중 가장 많다.
공단 정규직 직원의 72.1%를 차지하는 선박검사원과 운항관리자 중 3급 이상 해기사 비중도 56.4%에 달해 국내 최대 정기선 부정기선 선사인 HMM(45.8%), 팬오션(51.1%)은 물론 해수부 산하 해양환경공단(49.3%) 해양수산연수원(39.4%)보다 높다.
김 이사장은 “우리 공단은 여객선 이용객 1250만명(2024년 기준)과 10만여척 검사 대상 선박의 선주와 어업인, 연관된 조선소와 설계사무소 등의 종사자 1300만여명의 고객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