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제민주화다│② 재벌 지배구조 개혁 '지금이 호기'

사적편익 차단하고 소유·경영 분리유도

2017-01-11 10:31:06 게재

1000만개의 촛불이 세상을 바꿨다. 정치판이 새로 짜여졌다. 경제시스템은 이제 막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경제민주화다.

정치권도 경제계도 재벌개혁을 가장 먼저 도마에 올렸다.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유발자이자 동조자인 탓이다. 촛불민심이 재벌개혁을 밀어주고 있다. 개혁 법안은 일찌감치 마련됐다. 국회 통과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자본시장마저 지배구조 개혁을 압박할 정도다. 재벌 개혁의 시발점, 지배구조 개혁은 지금이 적기이자 호기다.


지배구조 수준 아시아 11국 중 8위 = 늘 재벌 지배구조가 화근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정경유착이나 오너 부실경영과 전횡 등 퇴행적 재벌경영의 근본 원인을 찾다보면 '낙후된 지배구조' 가 자리잡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포럼에서 "우리나라 재벌시스템의 문제는 무능한 3세, 정보를 왜곡하는 가신들 탓"이라며 "기업집단의 시너지효과를 부정할 순 없지만 권한만 있지 책임을 지지 않는, 그리고 대물림 받은 검증안된 지배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이나 삼성-엘리엇의 분쟁,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7 참사 등 스스로 근원적인 혁신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 부재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대부분의 재벌에선 내부 감시와 외부 견제 장치들이 오작동하거나 멈춘 지 오래다. 총수일가를 향한 쓴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IMF외환위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1997년 이후 소액주주권 강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제도 도입 등 정부와 국회가 나서 재벌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 나아진 건 별로 없었다. 정경유착의 고리는 끊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평가한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수준은 후진국이나 다름 없었다.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혹평이었다.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ACGA(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의 기업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은 2012년에 이어 2014년에도 주요 아시아 11개국 중 8위에 그쳤을 정도다. 대외신인도는 제자리를 맴돌았고 외국인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했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기업 지배구조는 경쟁력의 원천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본 요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관련 법제도 개선에 나서긴 했지만 실제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 관행 개선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것을 넘어 국제적인 신뢰 회복의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시들 뻔했던 경제민주화법안을 부활 = 최순실 게이트로 부각된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는 역설적으로 그들 덕분에 제대로 수술대에 오르는 운명을 맞았다. 정치민주화만큼 경제민주화를 완성하기엔 최적기라는 얘기다. 국정농단에 정경유착, 국민연금 사금고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시들 뻔했던 경제민주화법안을 부활시켰다.

특히 '헌법 119조 2항'을 곱씹게 만들었다.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 등 경제민주화법안의 논리적 근거다. 앞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뒤 저성장 기조에서 경제의 양극화와 소득구조 불평등이 심화됐다.

경제권력에 의한 권한 남용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제민주화 정책이 화두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초기까진 경제민주화 법안 국회통과는 불투명했다. 하세월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민심이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발효될 수 있도록 '생기'까지 불어 넣은 셈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탄핵정국 국면에 여소야대 상황에서 빠르면 올해 상반기안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도 경제민주화 정책이 핵심공약으로 등장할 것"이라면서 "대선에 앞서 열릴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안들이 통과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내다봤다.

현재 국회에 발의 된 경제민주화 법안엔 특히 재벌(대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는 법안들이 많다. 다중 대표 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집중 투표제 단계적 의무화, 전자투제 의무화 등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당 차원에서 입법을 추진중인 내용과도 비슷하다. 새누리당에서 쪼개져 나온 바른정당이 야당으로 탈바꿈하면서 기존 새누리당과 차별화를 위해 상법개정안 통과에 동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국회 안팎의 정황이 모두 경제민주화법안 통과를 가리키고 있다는 얘기다.

답 나온 재배구조 개혁 방향 = 답은 명료하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다. 그렇다고 강제할 순 없다. 법과 제도, 시스템으로 유도하면 된다.

최정표 경실련공동대표는 "경영투명성을 확대하면 황제경영은 사라지고 전문경영인 역할도 강화되며 재벌의 경제력 남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론 기업 내부에 독립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영이사회에 이해 관계자를 대표하는 이사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입장.

재벌 총수는 전횡을 부리기 어렵고 부당한 압력이나 사익추구 행위는 즉시 제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시스템으로 총수를 견제하고 감시할 경우 총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농단할 수 없게된다는 논리다.

최 대표는 "이런 투명경영이 정착되면 미국에서처럼 경영능력이 없는 세습경영인은 회사 경영에 흥미를 잃고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게된다"면서 "권한보다 책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세습경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유와 경영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총수일가의 사적편익(사익)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등 터널링(tunneling)을 통한 '사적편익 추구'가 한국 재벌 문제의 본질로 보는 시각이다. 기업가치는 물론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널링은 회사의 지하에 터널을 뚫어놓고 회사재산을 빼돌린다는 뜻의 학술용어다.

총수일가 소유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나 총수일가에 대한 계열사의 과도한 배당 등이 해당된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스웨덴 홍콩 이탈리아 등에도 피라미드형 지배구조 기업들이 많은데 이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재벌의 사적편익 수준이 최고 수준"이라며 "국내 대부분의 대규모기업집단들의 역사를 좇다보면 총수 일가 소유기업에 일감 몰아주기처럼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무리한 방식이 동원되고 경영능력에 대한 사전 검증 없이 후손 경영이 이어지는 등 기업가치 훼손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사적편익 추구가 적대적 M&A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게 김 교수 지론이다.

스웨덴 역시 재벌 중심 경제구조이지만 투명경영으로 터널링이 거의 없고 대표적인 독일 재벌 BMW는 지배주주가 이사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터널링이 있을 수 없다.

김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해 한국형 지배구조를 재설계할 경우 신한지주처럼 지배주주가 상장지주회사의 안정적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나머지 회사들이 모두 이 상장지주회사의 100% 자회사가 되는 형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사적 편익을 축소하고 특히 후대의 직접 경영참여 유인을 완화하면서 대주주와 이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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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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