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도 예측 못한 '달러약세' 왜?
2018-03-20 10:59:06 게재
아이켄그린 "트럼프 행정부 불확실성"
아이켄그린 교수는 "나 역시 감세와 금리 정상화가 느슨한 재정정책, 긴축적 통화정책과 맞물리면서 달러가치를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했다"고 고백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 시대의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 본 것이다. 감세 정책으로 미국 기업들이 해외의 수익을 들여오면 자본 유입 흐름이 일어나 달러 가치를 올릴 것이었다. 수입물가를 높이는 새로운 관세정책이 시행되면 미국 내에서 생산된 재화의 수요를 높일 것이고, 이는 완전고용 수준의 미국 경제에서 상쇄효과를 내 다시 수입품 수요를 높이는 결과를 낼 것이었다. 물론 가장 그럴 듯한 상쇄효과는 물가변동을 반영한 실질환율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실질환율의 상승은 인플레이션 또는 달러강세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하지만 환율시장은 1년이 넘도록 그같은 논리적 상황전개를 외면했다"며 "상황을 설명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달러약세와 관련해 현재 유통중인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능력이 없었든 방향이 잘못됐든 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바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입물 전반에 걸친 관세 부과 정책도 없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지도 없다. 1조달러 규모일 것이라 장담하던 사회기반시설 건설사업도 없다.
하지만 사실 큰 폭의 세금감면책이 있었다. 수차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감세안은 미국 기업들이 해외 이익을 본국으로 들여오는 당근책이 됐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같은 상황 전개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어야 한다"며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을 안 지켰다는 것 이상의 다른 설명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달러약세를 설명하는 또 다른 논리는, 투자자들이 달러강세가 아니라 인플레이션 때문에 달러의 실질환율이 오를 것이라 예상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연준이 뒤늦게 금리인상에 나서 인플레이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달러가 약화된 것이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이같은 해석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만 완전히 정확한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2017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 내 인플레이션 급증 상황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이 떨고 있는 이유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통제력을 잃고 뒷북을 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연준이 시장의 과열에 선제대응하기 위해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달러약세 상황과 관련해 대부분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불확실성"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투자자들은 정부 정책의 효과를 예측할 길이 없다. 이 방향으로 가는가 싶다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1조달러에 달한다던 사회기반시설 투자계획은 대폭 줄어들었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가 다시 가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강달러 정책을 폐기한 듯 발언하다가 곧바로 이를 주워담았다. 단 하나의 확실한 사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불확실성만큼 투자자들이 싫어하는 건 없다. 특히 환율시장 투자자들은 달러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를 '최후의 피난처'로 간주한다. 전통적으로 투자자들은 평상시 단순한 안전성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 더욱 도드라지는 안전성 때문에 달러에 투자한다. 달러 발행국인 미국이 자국 통화를 지키는 난공불락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깊고 가장 유동화가 손쉬운 금융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신뢰한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동맹국들에게 의구심을 안기고 있다"며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에 대항할 새로운 공격무기를 뽐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과 관련 정부폐쇄(셧다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미국 채권시장의 유동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줄 수 있는 처사였다.
백악관 내 혼란이 커질수록 달러의 가치하락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요인은 철강수입품 관세와 같은 달러부양 조치다. 이달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의 수입관세 부과를 선언했을 때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고 달러가치는 올랐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불확실성이 계속 지배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달 1일 달러가치 상승은 향후 환율시장에 닥칠 상황의 전조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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