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보워의 도전, 8% 경제성장률 가능할까
민족주의적 경제정책과 FDI 유치 딜레마 … 중국과 서방 사이 균형 잡힌 경제 전략
지난 10월 20일 인도네시아 8대 대통령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취임식에서 “이 나라를 더욱 자립적으로 만들고, 부패와 빈곤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장기 독재 이후 인도네시아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 불안에 시달렸지만 민주주의 국가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0년 간 연평균 5%로 경쟁국인 베트남, 필리핀, 인도보다 낮다. 역설적이게도 수하르토 정권이 억압하던 1990년대에 오히려 제조업의 성장에 기대어 8%대의 경제성장률을 경험했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5~6%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인프라 개발에 역점을 두며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했던 조코위 전 대통령 집권기도 5% 언저리의 성장률에 만족해야 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최대 경제국으로 인구 2억 8200만 명, 니켈 보유 및 생산 세계 1위, 코발트 생산 세계 2위, 석탄 수출 세계 1위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 게다가 무역과 안보에 필수적인 바다 항로 접근성과 핵심광물에 기반한 경제적 영향력 덕분에 국제사회의 주요 일원으로 변모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경제협력 현황은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양국 간 교역은 2023년 수출 91.4억 달러, 수입 121.5억 달러로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여섯 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소재인 니켈, 코발트 등 핵심광물에 대한 ‘핵심광물 양해각서’를 2022년 2월에 체결하고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조코위 전 대통령과 다른 보호주의적 성향 = 프라보워 대통령도 그의 선거공약에서 연 8%의 경제성장률, 학생 무상급식 프로그램, 부패 퇴치를 내걸었고, 58%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물론 선거 연설이나 토론회에서 조코위 전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실현했다고 칭송하며, 인프라 및 자원 개발, 수도이전까지 조코위의 모든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강조한 점과 조코위 전 대통령의 암묵적인 지원이 어우러져 당선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당선 전 프라보워 대통령은 조코위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인 접근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보호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곤 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그의 첫 두 대선 캠페인에서 무솔리니와 같은 전체주의자를 연상시켰고 고의적으로 강인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의 화법은 변덕스러운 성격을 반영했고, 주요 민주주의 개혁을 철회하고 경제적 보호주의를 수용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세 번째 선거에서 프라보워 대통령은 이미지를 ‘차분하고 노련하며 귀여운 할아버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대통령 당선에 주효했다.
그렇지만 군부출신인 프라보워 대통령이 자국을 우선시하는 강력한 민족주의자라는 점은 변함없어 보인다.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경제선언문인 ‘국가변혁전략(A Strategy for National Transformation)’은 산업에 대한 국가적 소유권 강화와 기업 이익, 특히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천연 자원과 관련된 이익을 자국 내에 유지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민족주의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수출 금지 및 외국인 투자 제한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아서 외국계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도록 한다.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를 넘어 글로벌 가치사슬로 = 프라보워 대통령이 공약한 8%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인도네시아는 지금보다는 개방된 무역·투자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인도네시아 기업의 기술력 강화와 글로벌 가치사슬과의 연계를 통해 제조업 수출 점유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시장개방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한 베트남 사례는 인도네시아에 주는 의미가 크다. 생산과정에서 최적 중간재를 기업이 스스로 선택해서 활용하는 것이 수출품의 품질 향상과 효율성의 배가에 도움이 된다. 이는 인도네시아 기업의 수출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이다.
사실 인도네시아의 내수 중심적인 보호무역 조치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하류 제조 부문을 생존하게 함으로써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수출에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휴대전화 및 자동차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현지화율(TKDN) 정책이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는지를 엄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올해 3월 인도네시아 산업부 헨드로 마르토노(Hendro Martono) 국장은 자카르타에서 열린 전기차 투자 촉진을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현지화율(TKDN) 산정 기준 변경을 소개했다. 현지화율 달성 정도를 산정할 때 현지 R&D 비중을 20%에서 10%로 낮추고, 현지 조립(Assembly) 비중을 20%에서 30%로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배점 조정은 R&D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해외 부품을 수입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조립만 해도 현지화율을 충족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현지화율의 제고를 통해 현지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높이려던 당초 목적 달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역내에 떨어지는 부가가치도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계은행 출신의 재무장관 재임명 배경 = 8%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조코위 전 대통령은 중국 경제의 하강, 지정학적 긴장고조 등 대외 경제 여건 변화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조코위 전 대통령이 재임한 지난 10년 간 중국은 인도네시아의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했고, 시장 점유율은 17.2%에서 28.4%로 상승했다. 대부분의 수입이 중간재와 자본재로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도네시아는 이미 중국과 공급망으로 긴밀하게 연계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조코위 전 대통령 집권기 동안 중국-인도네시아 간 광물산업의 하류 부문에 대한 협력 기반이 조성된 상태이므로, 관련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한동안 유지될 전망이다. 사실상 지난 10년 동안 중국 기업은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소의 90% 이상을 건설했다.
프라보워 대통령도 광물 산업 하류 부문에 대해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므로, 원광을 수출하기 보다는 중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제련·가공하는 현재 시스템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적인 모습을 관찰해온 서방 진영은 인도네시아가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로 부상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작년 말 미국 상원의원들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적용을 위한 미국-인도네시아 간 제한된 FTA 논의에 반대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다행히 프라보워 대통령은 세계은행 이사 출신인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를 재무장관으로 재임명함으로써 서구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 잡는 모습을 보였지만, ‘글로벌화된 민족주의자’로서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FDI 유입 통한 경제 성장 돌파구 마련 = 마지막으로, 8%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확대가 필요하다. 2024년 인도네시아의 국내 총저축은 GDP에서 37% 정도를 차지했다. 인도네시아가 8%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GDP 대비 투자율이 41~48%여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국내 총저축률(Gross Savings Rate)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인적 자본 개선, 혁신, 인프라 개발과 더 나은 거버넌스를 제공함으로써 FDI를 유치한다면 이 격차를 메꿀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인도네시아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순유입액(net inflow)은 GDP 대비 1.6% 수준으로 조코위 전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14년 2.8%에 비하면 오히려 하락했다. GDP 대비 FDI 저량(stock)을 비교해도, 2023년 20.8%에 불과하여 조코위 전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14년의 24.4% 수준보다 낮아졌다.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의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53.8%), 태국(56.2%), 말레이시아(48.5%)의 GDP 대비 FDI 저량의 비율이 거의 5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인도네시아가 FDI 유치를 위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FDI 유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인도네시아의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저축률을 높여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또한 FDI의 유입은 인도네시아가 베트남과 같은 글로벌 생산 허브로 변환하는 촉매가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과거와 같은 내부 지향적 발전 전략보다는 더욱 개방적인 수출 지향적 산업화에 방점을 둔 무역 및 투자 정책이 요구된다. 조코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한다는 핑계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에 빠져버린다면 8%의 경제성장률 달성은 요원해질 것이다.
◆경제도약 방안, 자유무역협정과 녹색에너지 = 이 밖에도 GDP 대비 과도한 부채 비율, 중산층의 감소, 지정학적 긴장 고조, 기후변화, 미국 대선 이후 미국과의 경제 협력 등 고려해야 할 대내외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8%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한 다음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인도네시아가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통합되려면 미국과 EU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이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FTA의 체결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안정성을 제고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도네시아가 한국 기업의 주요 수출 대상지인 미국과 EU와 FTA를 체결한다면 한국 기업이 베트남을 생산기지로 삼기 위해 투자했듯이 인도네시아로 직접투자가 더욱 집중될 수 있다.
둘째, 인도네시아는 녹색 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 부문에 대한 잠재력이 크므로,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과 관련 미래 산업 부문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수출기업들은 EU와 미국의 탄소배출 및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녹색 에너지 기술과 지속가능한 공급망 솔류션에 대한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는 미중 패권 경쟁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미국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공급망을 다각화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베트남, 필리핀으로 이전하고 있다. 중국에 기반을 유지하면서 주변 국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중국+1’ 전략은 이미 인도네시아에 이익을 주고 있고, 미국 대선 이후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을 선별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