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를 위한 로드맵│⑤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위한 남북군사회담
2000년 이후 군사회담만 50회 … 실효성 없었다
회담합의 후 법제화로 구속력 갖춰야
우발충돌 막을 남북정상 핫라인 고무적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신 베를린 구상'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을 의심했다.
베를린 구상의 후속조치로 우리정부가 제안한 적십자회담과 남북군사회담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끊이지 않고, 미국의 군사옵션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한반도 전쟁위기설까지 불거지는 마당에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신 베를린 구상이 사실상 폐기수순에 접어들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됐다.
설령 남북이 군사회담을 하기 위해 마주 앉는다고 치더라도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최근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북미정상회담도 내달 열릴 예정이다. 매우 까다로운 고차방정식으로 불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전혀 낯설게 들리지 않을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이렇게 되면서 군사위협 해소를 위한 군사회담은 훨씬 더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됐다.
다만 우선순위에서는 다소 밀리는 듯한 분위기도 엄연히 존재한다.
정상회담이 줄줄이 대기상태인데다가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거대 담론이 연일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나면 군사문제에 대한 논의는 필수과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 가볍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군사회담을 준비하는 주최인 국방부는 군사위협이나 긴장완화를 위한 방안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고 할 정도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은 "마치 쇼핑리스트에서 선택해 담기만 하면 될 만큼 남북이 그동안 합의하고 마련한 내용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같은 맥락에서 "물속에서 이뤄질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될 만큼 다양하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그동안 남북간 군사회담이 열린 횟수와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사회담 의제 차고 넘친다" = 국방부가 밝힌 남북군사회담 개최현황(2000년 9월 24일 이후)을 보면 2000년 제1차 국방장관회담을 시작으로 2014년 10월 군사당국자접촉(고위급군사회담)까지 모두 49차례의 회담이 진행됐다. 여기에는 두 차례의 국방장관회담과 일곱 차례의 장성급군사회담이 포함돼 있다.
김진무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최근 '역대 남북군사회담 평가와 대북협상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이후 남북군사회담을 총 50여회 개최한 것으로 분석했다.
국방부 통계보다 하나가 더 많은 것은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조성됐던 긴장상태 완화를 위해 열린 2+2회담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50여회 군사회담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가 났다.
김대중정부 시절 15회, 노무현정부 29회 열린 군사회담은 이명박정부에서는 4회, 박근혜정부 2회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회담과 대화가 줄어든 대신 남북간 긴장관계가 커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합의내용도 다양하다.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제거 공동노력(1차 국방장관회담)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전쟁반대 및 불가침 의무 준수(2차 국방장관회담)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제4차 남북장성급 회담) △우발적 충돌방지 위한 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서해공동어로구역 지정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김진무 연구위원은 군사회담의 실효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김 위원은 50여차례에 걸친 만남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군비통제에 대한 진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남북군사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더딘 이유로는 북한의 소극적 태도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그리고 남남갈등 등을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이를 근거로 향후 군사회담 방향에 대해 "단기 성과 위주 회담보다 협의중심의 협상, 남북군사 대화의 모멘텀 유지를 목표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획기적 결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한미동맹 이간 차단 등 방어적 수세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2단계 군사회담과 핫라인 설치 = 그러나 부정적 시각과 불신만으로는 현재 조성된 국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자꾸 과거의 잣대만 들이대면서 현재 변화된 상황을 읽지 못하면 해법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런 측면에서 군사위협 해소를 위한 2단계 군사회담을 제시했다. 1단계는 남북군사회담을 통해 우발적 충돌방지를 포함한 군사적 신뢰구축 등 긴장완화 방안을 모색하고, 2단계로 남·북·미 군사회담을 열어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군사구조 문제와 대북 군사적 안전보장 등을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간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할 과제들과 북미 혹은 남북미 회담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을 나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남북정상간 핫라인(직통전화) 설치는 우발적 충돌이나 남북간 위기가 고조될 때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였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지난달 6일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으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발적 충돌방지나 군사적 긴장완화는 국민들의 체감지수가 굉장히 높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북한의 도발에 따른 한반도 전쟁분위기가 커지면서 온 국민이 겪었던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대화국면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는 재론할 여지조차 없다.
과거 경험을 잘 살피면서도 달라진 현재의 구도를 정확하게 반영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과거 군사회담경험을 살려 실천가능한 것을 남북한이 동시에 법제화로 추진한다면 선언적 합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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