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를 위한 로드맵│⑥ 한반도 군사구조 대전환 모색
"비핵화 정착 위한 남·북·미 3자군사회담 열어야"
한반도에 군대 주둔한 3국이 주체로 참여
전작권 전환과 미래사 창설도 속도 낼 듯
주한미군, 유엔사령부 등 예민한 문제 검토
지난달 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한 뒤 밝힌 남북관계 6개항 가운데 세 번째에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내용이다.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은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언급한 것이다.
체제안전 보장은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 평화협정이나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공존의 제도화 등이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반해 군사위협 해소는 지금 당장의 실천과제로 볼 수 있다.
군사위협 해소는 두 트랙으로 진행돼야 한다. 하나는 남북간 군사회담이다.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간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비핵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될 문제다. 한반도내 군사구조 변화를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는 논의 틀이 필요하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 군사회담과 구별되는 남·북·미 군사회담이라는 2단계 회담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1단계인 남북 군사회담에서 우발적 충돌방지나 군사적 신뢰구축 등 긴장완화 방안을 모색한다면 2단계에서 한반도 군사구조 문제 등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안전보장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비핵화 정착 위한 3자 군사회담 =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그동안 내걸었던 내용 중에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있다. 비핵화 논의가 진전되면 주한미군 문제도 함께 다룰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나 체제안전보장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97년부터 99년까지 진행된 4자회담에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내세웠다. 당시 4자회담은 평화체제 분과와 군사적 긴장완화 분과로 나눠져 있었는데 군사적 긴장완화의 중요한 내용 중 하나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이 깨진다는 이유로 반대한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당시 미국 싱크탱크에서 남북미 3자 군사협정을 언급한 점이다. 평화체제에 대해서는 4자가 얘기하더라도 군사협정은 남북미 3자가 얘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한미군 등 한반도 군사구조 문제를 다루기에는 남북군사회담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새로운 논의 틀이 필요하게 된다. 남북미 3자 군사회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까지 포함하는 4자 군사회담이 아닌 이유는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한 주체가 남북미 3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에 군대도 없을 뿐만 아니라 1994년 군사정전위에서도 철수하면서 한반도 군사구조 문제에 관여할 어떤 권한도 없어졌다.
남북미 3자 군사회담의 전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남북 장성급 회담과는 별개로 휴전선 일대 긴장완화를 위해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에 장성급 회담이 몇 차례 진행됐던 경험이 있다. 2002년 9월과 2009년 3월에 열린 장성급 회담이 그 예다. 유엔군-북한군 장성급 회담은 사실상 남북미 3자 회담의 성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미연합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미 군사회담을 통해 새로운 3자 군사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가능하다는 의미다.
◆주한미군 문제와 비핵화 = 북한은 지난 2016년 7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비핵화를 위한 5대 조건을 제시했다. 5대 조건은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공개 △미국의 핵 타격 수단 한반도 미전개 △남측 내 핵무기 및 기지 철폐와 검증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 확약 △핵 사용권을 가진 주한미군 철수 선포 등이다.
그런데 4월 13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북미정상회담 실무접촉에서 북한은 미국에 비핵화 대가로 5개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제시한 5개안은 △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한미 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한과 미국의 수교 등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에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앞으로도 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재의 주한미군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섣불러 보인다. 북한은 이미 과거에도 비핵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용인하는 대신 성격을 바꾸는 방식을 언급한 바 있다.
가령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면 굳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비핵화 협상을 어렵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 대신 감축이나 그에 상응하는 성격전환과 위협요소 제거를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언급이나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언급 등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가능하다.
따라서 비핵화 논의 진전 여부에 따라 주한미군의 성격전환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다만 국내 여론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한미군을 한미동맹 그 자체로 여기고 있는 국내 보수진영에서 이 문제를 이념적,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조성된 대화국면을 살려 평화협정까지 체결하길 희망하는 평화운동 단체의 백악관 청원운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자, 보수진영에서는 평화협정 반대와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내걸고 또 다른 백악관 청원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런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단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또는 성격전환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보이면 앞서 언급했듯이 한반도내 군사구조 전반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나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전작권 전환 등 판도라 상자 열리나 = 유엔사는 '유엔안보리 결의' 제1511호에 의해 설립된 국제적 군사기구다. 주한미군을 포함해 16개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사의 사령관이 16개 참전국과 한국을 대표해 한반도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유엔사는 3가지 임무를 지니고 있다. 1953년에 체결된 한반도 정전협정의 이행을 감독하고 위반을 시정하는 임무와 만약 정전상태가 깨질 경우 다시 유엔 다국적군을 그 지휘 하에 두고 전투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는 전력제공 그리고 후방 군수지원 임무가 그것이다.
유엔사는 독자적인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사시 한미연합사에 지원을 요청해 대처토록 돼 있다. 이처럼 유엔사는 창설부터 운용에 이르기까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성격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되면 유엔사의 해체를 포함한 재조정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1978년에 설치된 한미연합사령부(한미연합사)는 정전협정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연합사 해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주한미군을 포함해 연합사의 성격전환에 대한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연합사에서 갖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군이 이양 받는 것을 전제로 한미연합사는 미래연합군사령부로 전환될 방침이다. 미래연합군사령부는 우리군의 합참의장이 사령관을 맡고 미군 사령관이 부사령관을 맡는 방식의 새로운 지휘구조다. 전작권은 평시와 전시로 나눠지는데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 12월 1일부로 한국군이 가져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권통제권은 노무현정부 시절 2012년까지 전환키로 한미가 약속했지만 이명박,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전환시기가 늦춰졌다.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3일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전작권 환수를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의 거듭된 핵과 미사일 도발로 남북간 긴장감과 한반도 위기감이 커지면서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 안보불안과 한미동맹을 절대 가치로 내세우는 보수진영의 논리까지 가세하면서 전작권 환수문제가 속도를 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작권은 한반도 군사구조의 변화와 직결되는 군사주권의 문제다.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진전을 보이면 전작권 환수문제는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물밑에선 상당한 진전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 19일부터 20일까지 한미 국방부가 진행한 제13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 결과는 이런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한미 양측은 "'전작권 전환 실무단(COTWG)' 회의를 통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의 목표를 충족시키는데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양측은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 사령관이 지휘하고, 한미 양국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의 공동 지침을 받는 연합지휘구조를 유지한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양측은 △전작권 전환 이후 적용하는 연합방위체제 관련 공동의 추진지침 마련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COTP) 최신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 승인 △ 전략문서 발전 등을 올해 중점과제로 선정하고 적극 추진키로 했다. 국내에서는 찬반양론을 놓고 극한 대립양상까지 보이고 있지만 이미 한미 양측간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상정하고 구축 중인 '한국형 3축 체계'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북한이 쏜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탄도미사일을 대량으로 발사해 북한을 응징하는 '대량응징보복'(KMPR) 체계를 의미한다.
천문학적인 예산투입에 비해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돼 왔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와 평화체제 구축이 본격화되면 한국형 3축 체계도 상당부분 축소 내지는 변경이 뒤따라야 할 대목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비핵화가 진전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면 주한미군, 전작권 전환,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문제, 3축 체계 등 다양한 분야가 재점검돼야 한다.
조성렬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한미동맹과 안보불안이라는 이유로 논의조차 꺼렸던 문제들이 모두 드러나고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면서 "말하자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앙으로 가득 찼던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희망'이었다는 점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봄'을 맞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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