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를 위한 로드맵│② 북한 체제안전보장과 북미수교

10년여 만에 찾아온 기회 … 관계정상화로 가는 관문

2018-03-19 10:18:45 게재

9.19공동성명 등 과거 '비핵화' 연계 3차례 합의

인권·위조지폐 등 미 의회 비준 조건 까다로워

지난해 전쟁위기설이 고조됐던 한반도에 대전환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평창발 '평화 무드'가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내부 정치사정도 대결보다는 대화, 협상이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정권수립일인 9.9절 70주년을 '민족적 대사'로 치러야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6일 의회 중간선거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짧으면 5개월 길면 7개월의 시간이 한반도의 적대적 대결구도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기회로 여겨진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포괄적 해법이 주목받는 이유다. <편집자 주>

한국의 대북특사단을 매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격 합의한 5월 북미정상회담은 양국 국정 최고책임자들이 일괄타결 방식으로 큰 매듭을 풀고, 그에 따른 실무협의가 이어지는 파격적인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김 위원장은 체제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직접 만나자"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5월까지 만나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관심사인 '비핵화'와 북한의 관심사인 '체제안전보장'을 어떤 방식으로 주고받을지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북한의 핵폐기를 이끌어내는 체제안전보장의 한 요소는 북미수교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의 교전당사자로 '적대관계'를 이어온 미국과 북한이 냉전적 대결을 마감하고 관계정상화, 국교정상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의 주권을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조건을 만드는 북미수교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관계정상화 조치로 연결돼 북한이 체제위협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2008년 클린턴 평양방문 목전까지 = 과거 미국과 북한은 관계정상화에 다가서는 합의를 몇차례 이룬 바 있다.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으로 제1차 북핵 위기를 맞이하면서 이듬해인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가 체결됐다. 제네바합의에서 북미는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안 해결의 진전에 따라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키로 했다.

하지만 이후 양측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수출을 놓고 난항을 겪었고 1998년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하면서 합의 이행은 지지부진해졌다.

북미 관계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시 적극성을 띠었다. 그해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에서 회담을 열었다. 양측은 여기에서 '북미 공동커뮤니케'를 발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군사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목전까지 갔으나 같은 해 11월 미 대선에서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북미대화는 막을 내렸다.

세 번째 기회는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의혹이 불거져 제2차 북핵위기가 발발한 이후에 왔다.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및 '10.3합의'가 채택돼 북미는 상호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에 나서기로 했다.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북미수교다.

이에따라 북한은 2008년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가동일지를 미측에 제공하는 한편, 냉각탑을 폭파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추진했지만, 대선 기간이던 그해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고,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개최됐지만 '불능화 검증'을 둘러싼 북미간 견해차로 협상이 깨졌다.

행정부 권한만으론 '부분적 관계정상화' =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교환해 문제를 해결할 드문 기회다. 그러나 북미간 정상적인 국가관계 수립은 미국의 국내법과 정치적 여건상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미국과 완전한 외교관계(full diplomatic relations)를 맺기 위해서는 미 상원 재적인원 100명의 과반수 참석과 3분의 2의 찬성(67명)이 필요하다. 상원의 비준동의가 없으면 △해외공관 운영에 필요한 예산 배정 △대사의 인준이 불가능하다. 완전한 북미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양국 정부당국의 합의뿐 아니라 의회의 비준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원의 비준동의가 외교관계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행정부의 권한만으로 부분적인 외교관계(partial diplomatic relation)는 맺을 수 있다. 행정부가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 이익대표부(representative office) 등을 설치할 수 있다. 의회가 전권대사 인준을 동의하지 않으면 대리대사 체제를 운영할 수도 있다.

그동안 미 의회는 북미수교의 조건으로 비핵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전제를 달아왔다. 인권문제, 위조지폐·마약 등 불법행동, 생화학무기 등 광범위한 이슈들의 해결을 요구했다.

이런 여건을 놓고 볼 때, 북미수교의 현실적 절차는 핵동결 단계에서 부분적으로 관계정상화를 이루고 핵폐기의 일정 시점에서 완전한 정상적 관계로 가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행정부가 자체 권한으로 부분적 관계정상화를 이룬다 해도, 대북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 혹은 해제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이 경우 행정부는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닌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 정도만 완화할 수 있다. 북한이 미 의회 등으로부터 그만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수교의 최종단계에서 완전한 국교정상화를 이룰 때까지 북한이 비핵화 절차를 모두 거치면 되는 것인지, 미 의회의 요구사안인 인권문제, 위조달러 등까지 모두 해결해야 하는지가 협상타결 이후에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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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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