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정부 뒷짐에 국회가 나서

2018-05-03 11:09:32 게재

근로자 이사회 참여, 법 개정안 잇따라 … 금융권 노조도 본격적인 투쟁 선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면서 100대 국정과제인 노동이사제 도입에 뜸을 들이는 사이 정치권과 노동계가 나섰다.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문 대통령이 나서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배타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과 금융노조, 사무금융노조는 2일 국회에서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사무금융노조 제공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은 1일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근로자 대표를 이사로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과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개정안을 입법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기업은 사내이사 중 1명을 노조 또는 노사협의회에서 근로자가 선출한 사람을 임명토록 했다. 이 의원은 또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우 상임이사 중 1명 이상을 근로자대표로 임명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독일 등 EU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노동이사제를 통해 경영에 대한 이해를 돕고 기업성장을 위해 노사협력을 도모해가는 한편 투명한 경영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기업의 경영실패로 정리해고 등 많은 피해를 받고 있지만, 직접 기업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도 조만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해, 은행이나 증권사 등 민간 금융회사에서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정 의원은 2일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노동계와 공동으로 주최한 자리에서 "노동이사제는 공공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금융기관부터 도입하 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정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는 지난해 말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을 권고했던 윤석헌 전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이 사회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현대의 노동계약에서 노동자는 채권자로서의 속성과 주주로서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우리사주 주주는 명실상부한 채권자이면서 주주"라며 "따라서 노동자에게 이사 추천의 형태로 경영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회사 지배원리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 구체적인 도입 방안으로 △상법에 반영하는 것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반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실제로 2016년 당시 민주당 김종인 대표 등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에서도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후보자를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했다.

금융권 노동계도 향후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해 투쟁에 나서겠다고 했다.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는 2일 국회에서 '금융공공성 강화 및 금융민주화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금융공투본) 출범식을 갖고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위와 기재부는 금융혁신위 등이 제안한 노동이사제 또는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에 대해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기재부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움직임을 보겠다고 미루고 있고, 기재부는 현재까지 이에 대한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금융권 노조 등에서는 최근 금융감독원장의 잇따른 낙마와 금융권 전체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편승해 노동이사제 도입을 슬그머니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현정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말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권고안에서 노동자추천이사제를 제안했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사실상 거부했다"며 "정권은 바뀌었지만 금융정책은 아직 바뀌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럴 거면 왜 자문기구로부터 권고안을 내도록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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