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태풍의 이중성
격렬해지는 계절변화 대립, 찬 공기 남하의 숨은 뜻
여름 끝이 아닌 ‘태풍 길 열렸다’일 수도
10월에도 발생 가능, 긴장 끈 늦추면 안돼
징검다리 연휴를 앞두고 제18호 태풍 ‘끄라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최장 열대야와 늦더위로 몸살을 앓았지만 태풍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기에는 이르다.
29일 기상청은 수시브리핑을 통해 “대만 동쪽을 스치고 전향해 상층기압골을 따라 이동, 10월 4일 제주도 남쪽 먼 해상까지 북상할 수 있다”면서도 “서진 지속 여부 등 변수가 한둘이 아니므로 섣불리 태풍 경로를 예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쾌청한 가을 하늘 속에는 언제 돌변할지 모를, 변화무쌍한 대기의 움직임들이 숨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급변하는 모습들의 원인을 기후변화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
#1. 전국의 가을철 평균기온은 15.1℃로 평년(14.1℃)보다 1.0℃ 높았으며, 1973년 이후 3번째로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 기상청 ‘2023 연 기후 특성보고서’ 중.
#2. 전국의 가을철 평균기온은 14.8℃로 평년(14.1℃)보다 0.7℃ 높았으며, 1973년 이후 9번째로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 기상청 ‘2022 연 기후 특성보고서’ 중.
#3. 전국의 가을철 평균기온은 14.9℃로 평년(14.1℃)보다 0.8℃ 높았으며, 1973년 이후 5번째로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 기상청 ‘2021 연 기후 특성보고서’ 중.
최근 몇 년째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가을 기후 특성 분석들이다. 이제 기온 상승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18일 발표된 세계기상기구(WMO) 등이 참여한 ‘과학 연합(United Science)’ 보고서에서는 현재 정책대로 한다면 이번 세기에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이 3℃가 될 가능성은 2/3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후 방어선으로 여겨지는 기온 상승 폭은 1.5℃다.
27일 강남영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계절변화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며 “과거보다 여름이 길게 버티면서 상대적으로 수증기를 많이 가지게 되는 등 이런 격렬한 대립으로 인한 가장 큰 사건은 태풍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발생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열대성저기압(태풍)은 최근 감소 추세다. 반면 태풍 강도는 커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2023년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의 최대 발달 강도 분포는 △‘초강력’ 2개(11.8%) △‘매우 강’ 5개(29.4%) △‘강’ 2개(11.8%) △‘중’ 3개(17.6%) 등이다. ‘중’ 이하 태풍은 평년과 비슷했다. 하지만 ‘매우 강’ 이상은 평년보다 많이 발생했다.
태풍은 직·간접적인 영향 대비가 중요하다. 단 한 번이라도 태풍이 강타한다면 그 피해는 다른 어느 기상 현상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평년은 지난 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다.
◆필리핀 동부 해역 열기 여전 = 30일 기상청은 “북쪽에서 찬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찬 공기가 남하해 10월 1일 비가 내린 뒤 쌀쌀해지겠다”며 “10월 2일 중부지방 아침 기온은 10월 1일 보다 5~10℃ 낮아져, 일부 경기내륙과 강원내륙·산지에는 10℃ 이하(강원산지 5℃ 이하)가 될 수 있다”고 예보했다.
찬 공기가 내려왔다는 의미로 우리는 드디어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됐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바로 태풍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강 교수는 “쉽게 얘기하면 따뜻한 공기가 부풀어 세력이 형성되면 일종의 벽 같은 게 생기는데, 이렇게 되면 태풍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비켜 가게 된다”며 “태풍이 가려는 길과 찬 공기가 열어주는 문이 맞아떨어지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필리핀 동부 해역 열기가 식지 않은 만큼 방심은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기상청의 ‘2023 한반도 영향태풍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북서태평양에서 태풍 17개가 발생했다. 이 중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1개다. 평년(1991~2020년)과 비교하면 발생 태풍(평년 25.1개)과 영향 태풍(평년 3.4개)이 모두 적었다. 4월에 첫 태풍이 생긴 뒤 △봄철(3~5월) 2개 △여름철(6~8월) 10개 △가을철(9~11월) 4개 △12월 1개가 발생했다.
◆가을태풍 변화는 태평양 10년 주기 진동과 관련 = 1998년은 폭염과 태풍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해다. 국제학술지 ‘기후역학(Climate Dynamics)’에 실린 논문 ‘서태평양 가을 태풍 활동의 급변: 다양한 기상 현상 간 상호작용의 영향’에 따르면, 1998년 가을(9~11월) 북서태평양 열대저기압 활동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 1988~1997년 열대 서태평양에서 열대저기압 발생 빈도가 증가했다. 반면, 1998~2007년은 열대저기압 비활성기로 전반적으로 발생 빈도가 줄었다. 단, 대만과 중국 남동부 해안에서는 열대저기압 빈도가 늘었다.
이는 ‘태평양 10년 주기 진동(PDO)’이 양의 위상에서 음의 위상으로 전환된 시기와 일치한다. 음의 위상일 때는 북서태평양 북동태평양 연안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높아진다. 반면, 양의 위상일 때는 해당 지역 해수면 온도가 낮아진다.
태평양 10년 주기 진동은 중위도 태평양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수십 년 주기로 변화하는 걸로, 자연적인 현상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기후변화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높아진 해수면 온도로 인해 대기가 뜨거워질 수 있고, 이는 폭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후역학에 게재된 논문 ‘1990년대 말 이후 서태평양 태풍 생성 감소: 중태평양 엘니뇨-남방 진동(ENSO)의 불균형적 영향’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한반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북서태평양 지역 태풍 발생 수가 1997~1998년을 기점으로 20% 이상 감소했다. 이는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 변화와 대기 순환의 변화, 엘니뇨 등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가을 태풍의 변화는 △엘니뇨-남방 진동 △태평양 10년 주기 진동 등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엘니뇨-남방 진동은 적도 태평양 지역 바람과 해수면 온도가 수년 주기로 바뀌는 현상이다.
27일 예상욱 한양대학교 에리카 해양융합과학과 교수는 “지금은 태평양 10년 주기 진동의 음의 위상이 강한 시기로 북서태평양 지역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특성이 있다”며 “올겨울 라니냐로 전환되면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라니냐 냉각 효과에도 온난화는 계속 = 라니냐는 열대 무역풍이 평년보다 강해지면서 열대 동태평양에서 저수온 현상이 강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라니냐는 북태평양 지역 대기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어 해수면 온도를 높일 수 있다. 라니냐의 시작은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열대 태평양 Nino 3.4 지역 : 5°S~5°N, 170°W~120°W)의 3개월 이동 평균한 해수면 온도 편차가 -0.5℃ 이하로 5개월 이상 지속될 때의 그 첫 달이다. 엘니뇨는 그 반대다.
11일 WMO는 엘니뇨도 라니뇨도 아닌 중립 상태에서 9~11월 라니냐로 전환될 가능성이 55%라고 발표했다. 10월~2025년 2월에는 60%로 증가한다.
셀레스트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단기 냉각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대기 중의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의 장기적 경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2020년부터 2023년 초까지 수년간 지속된 라니냐의 냉각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난 9년은 기록상 가장 따뜻했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열대야로 힘든 여름을 보낸 만큼 벌써부터 겨울철 이상기온에 대한 걱정이 높다. 라니냐가 발달하면 우리나라 부근에 상층골(대기 상층부에서 나타나는 기압이 낮은 지역)이 위치하고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북풍 계열의 바람이 유입돼 기온이 평년보다 다소 낮을 수 있다.
강 교수는 “북극진동은 평균적으로 보기 어려운 하나의 사건과 같은 면이 있다”며 “북극 쪽의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불규칙하게 흐르는 현상(난류)인데, 찬 공기가 특정 지역에 모여 있거나 집중돼 덩어리져 떨어져 나오면 한파가 올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몇 개 사건들로 평균을 내려 경향성을 판단하기는 힘들다”며 “전반적으로 추위가 심해진다는 경향성으로 해석하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