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 결국 재벌에 은행 바치는 꼴"

2019-06-04 11:33:43 게재

은산분리 쟁점 2라운드 … 규제완화 우려, 시민단체 내일 기자회견 "요건완화는 특혜"

인터넷전문은행을 둘러싸고 은산분리 규제완화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 제정됐지만 인가를 신청한 2곳이 모두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규제를 더욱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5일 오전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자격 완화 추진 중단'을 촉구할 예정이다.
대화하는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 | 지난달 30일 정부와 여당은 긴급 당정협의회를 열고 인터넷전문은행의 규제 완화를 논의했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금융분야 빅데이터 인프라 오픈 행사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과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이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은 하나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보이고 네이버가 시장에 뛰어들지 않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여기서 은산분리 규제의 둑을 더 허물면 궁극적으로 재벌에게 은행을 바치겠다는 것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경쟁력을 잃으면 결국 재벌 인수 주장이 나올 것이고 재벌이 은행을 갖게 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현실화된다"며 "정부는 은행까지 인수한 재벌이 쓰러지는 것을 막아줄 수밖에 없고, 해외에 불법자금을 조성하거나 뇌물공여 등을 잡아내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을 마치 혁신의 상징으로 여기면서 시장의 자율에 맡기지 않고 각종 예외를 인정해주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유럽에서는 은행들이 자회사를 설립해 인터넷전문은행을 운영하는 것처럼 국내 은행들도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정부의 개입으로 시장에 심각한 왜곡을 가져왔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인터넷전문은행을 무슨 옥동자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적절치 않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은 지점이 없는 일반은행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소규모의 다양한 은행이 나와야 혁신이 가능하다"며 "너무 인터넷전문은행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왜 특별히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서 규제를 완화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특정업체 봐주기식의 요건완화를 추진하면 특혜시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완화하면 나중에 재벌의 은행업 진출까지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고 교수도 동의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맞지만 재벌 주장에 대해서는 과도한 우려라는 지적도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영업을 하고 있는 2개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실적이 좋지 않은데 2개를 더 인가해주면 과당경쟁이 될 것"이라며 "추가로 인가를 더 내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금 새로운 분야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은 재벌에 가까운 대기업 정도"라며 "재벌이라고 해서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삼성이나 SK, LG 정도 되는 재벌들은 현재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은행업까지 진출해서는 안된다"며 "그 외의 기업들을 막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1분기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각각 12.48%와 13.41%로 국내은행 평균(15.40%)에 못 미쳤다.

특히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케이뱅크는 총자본비율이 지난해말 16.53%에서 3개월 만에 4.05%p하락하는 등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케이뱅크의 총자본비율은 국내은행 중 최하위다.

더불어민주당과 금융당국은 지난달 30일 당정협의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에 대해 논의했다.

참여연대 등 7개 시민단체는 2일 공동 논평을 통해 "재벌대기업 중심의 독점적 경제구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금융질서 유지를 위한 파수꾼으로 작동돼 온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한데 이어,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은산분리 완화로 인한 위험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요건의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대주주의 적격성은 금융회사를 소유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산업자본이라고 해서 그 요건을 달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규제 완화를 위한 법 개정이 산업자본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좀 지켜보자"면서 "지금 금융위가 어떤 입장을 밝힐 단계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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