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원 당직실서 숨진 신영록씨 산재 인정

1주 113시간 근무 '업무상 과로사'

2019-08-06 11:31:35 게재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서 … 전공의단체 "과로 근절 계기 되길"

인천 가천대길병원 전공의로 근무하다가 병원 내 당직실에서 사망해 논란이 됐던 고 신형록씨에 대해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월 1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근무하던 중 병원 내 당직실에서 사망한 고인의 유족이 제출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에 대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5일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앞서 지난달 30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열어 고인의 사망과 관련 업무상 질병 여부를 심의했다. 이 결과 고인의 과로여부는 발병 전 1주 동안 업무시간이 113시간, 발병 전 12주 동안 주 평균 98시간 이상(발병 전 4주간 주 평균 100시간)으로 업무상 질병 과로기준을 상당히 초과한 것으로 확인했다.

지난해 1월 개정된 산재인정기준에 따르면 발병전 12주 동안 평균 업무시간 60시간(발병전 4주동안 평균 64시간) 이상, 52시간 초과하는 경우 업무부담가중요인이 있으면 만성과로기준에 해당된다. 또 업무부담 가중요인은 △근무일정 예측곤란 △교대제 △휴일부족 △유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 노출 △높은 육체적 강도 △정신적 긴장 업무 등이다.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정될 수 있다. 야간근무의 경우 주간근무의 30%가 가산된다.

업무상질병판정위는 이를 근거로 "고인이 지난 1월부터 소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과중한 책임감과 높은 정신적 긴장 등 업무상 부담 가중요인이 확인됐다"며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특히 부검결과 고인의 사인이 '해부학적으로 불명'이나 업무상질병자문위원회를 열어 관련 자료 등을 통해 사인을 확인한 결과 '심장질병(급성심장사)'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업무상질병자문위원회는 직업환경의학의, 임상의 등 외부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공단 내 위원회다. 위원회는 직업성 암, 사인미상, 자살 등 업무상 질병을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판정하기 위해 재해조사와 전문(역학)조사 관련 자문을 실시하고 있다.

심경우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개선과 함께 고인과 같이 사인이 불명한 사건인 경우 업무상질병자문위원회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자문을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절차개선을 통해 근로자 보호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가 전공의·수련의 근무시간을 최대 주 8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신씨의 사망 사고를 비롯해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의료계를 중심으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심의 결과가 전해지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정 결과가 전공의 과로 재해를 근절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전공의 과로는 결국 환자 안전 그리고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천대길병원과 정부는 아직 유족이나 전공의들에게 사과도 없고 반성이나 변화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판정 결과가 산재 승인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특별근로감독 등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전협은 △야간 당직 시 전공의 1인당 담당 환자수 제한 △입원전담전문의 고용 활성화 △전공의법 미준수 건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앞서 4월 대전협는 전공의들의 수면 환경과 야간당직 업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국 90여개 수련병원, 660여명의 전공의 중 81.1%가 평소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항상 충분하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0.9%에 불과했다. 수면을 방해하는 가장 주된 요인으로는 과도한 업무나 불필요한 콜 등 업무 관련 이유가 86.5%를 차지했다.

특히 불충분한 수면으로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32.6%가 '항상 느낀다'고, 37.6%는 '자주 있다'고 답했다. 반면 '전혀 없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2.6%에 그쳤다.

이 외에도 전공의들은 "36시간 연속 수면 없이 근무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일한다" "집중력이 떨어져 무거운 수술 도구를 나르다 다쳤다" "환자를 착각해 다른 환자에게 검사하거나 투약할 뻔한 적이 있다"며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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