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유예·폐기 기운 민주당 지도부…당 안팎 비판 거세다
금투세 설계자 최운열 “객관적인 데이터로 얘기해야”
홍종학 전 장관 “가치 버린 정당에 열정 지지자 없다”
이준구 교수 “여당에 말려 … 정체성 내버리는 졸책”
소수 7당·시민단체도 ‘민주당의 변심’에 총공세 예고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석 달도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도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위임받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향한 당 안팎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입장이 유예나 폐기쪽으로 무게가 옮겨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도화라는 시험에 든 민주당”,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졸책 중 졸책”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소수 진보진영 7개 원내외 정당과 주요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민주당의 변심에 채찍을 내리칠 기세다.
민주당은 당내에 애초 계획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주식시장 침체와 투자자들의 반발 등을 고려해 유예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지난 4일 의원총회를 열어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7일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주장하는 민주당 모 의원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지 않으면 따박따박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자 입장에서는 불공정하다는 의식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투자소득세는 부자들의 주식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검토하는 유예나 폐기가 결국 부자감세에 대한 현 정부의 기조에 동조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는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시장 불안을 고려해 ‘빠른 결정’을 생각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달 말부터 시작하는 ‘세법개정안’ 협상의 지렛대로 ‘금융투자소득세’를 활용하기 위해 결정을 늦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도부의 결정을 앞두고 당 바깥의 진보적 인사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주당 지도부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결정 가능성에 대해 “최근 여러 가지 이슈에서 민주당답지 않은 미적지근한 태도로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더니 드디어 정부, 여당의 치졸한 술책에 말려드는 일까지 저지른다”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25년에 금투세가 시행될 예정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도망가야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미 발 빠르게 자금을 빼갔을 것이다. 만약 금투세 폐지론자의 주장이 맞다면 금투세가 정말로 폐지되는 순간 해외로 빠져나가던 자금이 밀물처럼 국내로 다시 유입되는 일이 벌어져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 얄미운 것은 이런 정부, 여당의 얄팍한 술수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지 않고 슬그머니 꼬리는 내리는 민주당”이라며 “이번 일을 비롯해 민주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민의힘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종부세나 금투세의 감세가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 주는 효과 이외의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며 “서민들은 종부세나 금투세가 자신이 내는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기 마련인데, 정부와 여당은 이 사실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용감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는 것은 야당인 민주당뿐 아니냐”며 “기꺼이 정부, 여당의 협조자가 되려 하는 민주당에게 무슨 기대를 걸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또 이 교수는 “표 몇 장을 더 얻으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은 졸책 중의 졸책”이라며 “줏대 없는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과거의 지지자들이 속출할 것이며, 그 결과 잃게 되는 표가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홍종학 전 의원은 “금투세를 반대한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며 “코흘리개들 푼돈 예금 이자는 과세하면서, 수억대 이익을 본 주식 투자자는 비과세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눈치보기를 넘어 중도화를 저울질하고 있다”며 “가치를 저버린 정당을 보며 피끓는 열정을 보일 지지자는 없다. 중도화라는 시험에 든 민주당이 모습이 애처롭다”고 했다.
금융투자소득세 기획자인 최운열 전 의원(한국공인회계사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2017년 2018년도에 도입할 때는 꼭 필요한 세금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한다”며 “지금이 아닌 이유를 연구 검토, 시뮬레이션해서 객관적인 데이터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포 마케팅이 의지를 꺾는 것”이라며 “금투세는 오히려 투자자에게 친화적인 세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이면 증권거래세는 0이 되는데, 지금 와서 금투세를 폐지하려면 2017년 수준으로 거래세를 환원해야 한다”며 “그래야 세수에 결함이 생기지 않는데 그 부분의 대책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국가 경영에 대해선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범위 내에서 제도를 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대표적인 시행론자인 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선거가 없는 시기(내년)에 시행하자고 했는데, 다시 유예하려면 ‘언제 어떠한 조건에서 시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민주당은 대외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만일 22대 국회의원 임기 내에 시행하지 않고 그 이후에 시행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스스로 권한 밖의 약속을 하는 것이므로 신뢰할 수 없는 약속이다. 민주당의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 등 일각에서 검토하는 대선 이후인 ‘4년 후 시행’에 대한 반대입장으로 해석된다. 오 의원은 또 “22대 국회의원 임기 내에 어떻게 할 것인가, 최대한 보완하여 시행할 것인가 아니면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시행할 것인가의 선택이 남아 있다”면서도 “이미 여야 합의로 법률상 도입된 것이고, 현행 법의 시행만 남겨둔 제도”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