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에서 찾아낸 인류의 과거, 그리고 미래 이야기
달라지는 산불, 새롭게 대두되는 독성 물질 영향 … 타버린 건물에서 옛 기후 유형 읽고 인공지능으로 위험 예측
산불에 대한 공포가 전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인간의 실수와 잘못된 산림 관리, 그리고 기후변화. 이들 요소가 맞아떨어지면서 화재 위험은 더 커지고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검은 숯덩이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202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약 2만3200㏊에 달하는 면적을 태웠고 4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냈다고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만 이 정도로 향후 건강학적 영향을 생각하면 그 규모는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늘어나는 도시와 야생의 만남, 새 건강 우려
인간이 사는 지역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산불 발생 양상도 달라진다. 과거 전통적인 산불과 달리 야생지역(자연)과 개발지역(도시)이 겹치는 곳에 발생하는 화재(WUI)의 경우 공중 보건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주택 등 건물이나 자동차 등 인공 구조물과 식물이 함께 타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독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한 대규모 산불 이후 대기 의학 등 각 분야 과학자들이 캘리포니아 주 알타테나에 있는 한 단층 주택에 모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버드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등 10여개 대학과 기관은 산불로 인한 장기 영향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는 WUI 발생 이후 공기 물 토양 등 모든 것을 한 번에 살펴보는, 의미있는 시도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산불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PM-2.5)가 동일한 양의 일반 대기 중 PM-2.5보다 더 유독할 수 있다는 독성학 연구 결과들이 잇달아 나온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의 논문 ‘산불 연기가 다른 발생원의 미세먼지보다 호흡기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남부 캘리포니아 관찰 연구(Wildfire smoke impacts respiratory health more than fine particles from other sources: observational evidence from Southern California)’에 따르면, 산불에서 발생한 PM-2.5가 10μg m⁻3 증가할 때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입원이 1.3%에서 최대 10%까지 증가했다. 이는 산불이 아닌 경우에 발생한 PM-2.5로 인한 호흡기 질환 입원 수치 0.67~1.3%와 비교했을 때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지역별 기후 차이를 밝히다
타버린 인공 구조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미래 위험만 있는 건 아니다. 타버린 건물의 재에서 우리는 과거 지구의 모습을 유추할 수도 있다. 최근 주목을 받은 건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문화재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함부로 변화를 줄 수 없다. 2019년 4월 화재가 났을 때 전세계적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인류 유산이 손상을 입었지만 최대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타버린 나무 조각들을 이용해 서기 950년에서 1250년까지 지속된 유럽 중세 온난기의 지역적 기후 조건을 알아냈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연구책임자이자 화학자인 마르틴 레거르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라는 충격의 시간 뒤 건물의 물리적 파괴가 그 안에 담긴 과학적 정보의 손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며 “우리의 감정은 과학적 동원으로 전환됐다”고 말한 바 있다.
프랑스 역사유적보존연구소(LRMH) 연구팀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구성하던 참나무 구조물들에서 나온 타버린 목재 조각 1만개를 분석했다. 탄화된 나무들 속 셀룰로오스를 분석해 탄소-13과 산소-18 동위원소 수준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구했다. 탄소-13은 온도 변화, 산소-18은 습도 변화의 지표가 된다.
물론 연구팀은 화재로 손상된 노트르담 대성당 들보 내부만 분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파리 근교의 두 수도원에서 얻은 자료들을 결합해 980년부터 1180년까지 200년 동안의 기후 조건을 밝혀낼 수 있었다.
연구팀은 “파리 지역이 알프스 나무들로부터 추정된 것만큼 따뜻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 이유를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을 분석해 중세 시대 유럽의 기후를 추정했다. 이 분석은 종전 연구와 다른 결과다. 같은 시대라도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자연과 공존을 위한 기술 기반 의사결정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다. 요즘 전분야를 강타하는 인공지능이 산불에도 돋보기를 들이댔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경관(landscape)의 공간적 유형이 산불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그중 하나다.
국제 학술지 ‘환경 모델링&소프트웨어’의 논문 ‘딥 파이어 토폴로지: 인공지능을 활용한 산불 발생에서 경관 공간 패턴의 역할 이해(Deep fire topology: Understanding the role of landscape spatial patterns in wildfire occurrence using artificial intelligence)’에 따르면, 인구 밀도나 기상 정보와 같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토지피복 자료만으로도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할 수 있었다.
‘딥 파이어 토폴로지’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경관의 공간적 유형이 산불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다. 이 모델은 합성곱 신경망(CNN) 기반으로 토지피복 이미지를 화재 또는 비화재로 레이블링하는 지도 학습 접근법을 사용한다. 50번의 훈련 에포크 후 검증 세트에서 91.85%의 정확도(AUC = 0.98, 특이도 = 0.91, 민감도 = 0.96)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전체 데이터세트들에서도 정확도 92.4%를 보였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합성곱 신경망은 주로 이미지 처리와 분석을 위해 설계된 딥러닝 알고리즘이다. 에포크는 학습 데이터세트가 신경망을 한 번 완전히 통과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산불로 인한 토양 수문학의 변화를 파악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활발하다. 화재 규모가 클수록 표면 유출과 토양 침식 취약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잘 파악해야만 중장기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발생 빈도와 심각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산불 예방을 위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중요도도 함께 커지고 있다. 산불을 더 이상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닌 복합적인 사회·환경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공존 방안을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