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실전편 2

안쓰는 땅과 기존시설 활용, 넷제로·그린수소까지

2023-05-15 11:04:38 게재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위해 '마른수건 짜기' … 균형잡힌 에너지원 확보와 안보문제도 고려해야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시설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했죠. 기존 시설을 다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안쓰는 공간을 활용해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안을 강구했습니다. 덕분에 지난해 탄소중립률 112%를 달성했죠. 종전 설비들을 최대한 활용해 넷제로(온실가스 실질 배출량 0) 달성에 대해 문의가 많이 옵니다."

안산 수소 인프라 시설이 구축되면 그린수소를 하루 최대 244kg 생산할 수 있다. 사진 이의종


9일 경기도 안산시 시흥정수장에서 만난 최성국 한국수자원공사 수도운영부장의 말이다. 시흥정수장에서는 팔당댐 상류(팔당2취수장)에서 원수를 받아 안산시 시흥시 시화공단 등지에 생활용수나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하루 물 25만8000톤(시설용량)을 가정이나 공장에 제공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역할도 한다.

정수지 침전지 건물옥상 등 곳곳에 태양광 발전설비가 빼곡하게 자리잡았다. 물속에 함유된 각종 부유물질을 응집·침전시키기 위해 파동볼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면 위에는 태양광 패널들이 지붕처럼 설치돼 있다. 이들 태양광 발전설비 총용량은 1714kW다. 태양광 연계형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있어 낮에 발전해서 저장해 둔 재생에너지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시흥정수장은 유휴부지를 활용해 넷제로를 달성했다. 사진 이의종

최 부장은 "정수장 운영을 위한 전기 사용으로 지난해 온실가스 764톤CO₂eq(이산화탄소 상당량)를 뿜어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854톤CO₂eq를 감축했고 건물태양광 등 추가 설비들이 들어서면 더 많은 온실가스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관점을 달리하면 관련이 없어 보이는 환경기초시설들도 탄소중립 달성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세웠다.

◆낡은 환경시설이 에너지 생산설비로 = 지난 3월 정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세부이행계획을 확정했다. 하지만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과연 2030년까지 7년 남짓 남은 기간 동안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나 증가 속도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대비 낮은 편이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율은 4.6%p(2020년 기준)에 불과했다. 반면 덴마크는 50%p, 독일 27%p, 프랑스 10%p 등으로 가팔랐다.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22년 9.2%에서 2030년 최소 21.6%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2배 이상 비중을 높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지나치게 태양광 비중이 높은 문제 등 에너지원별 균형잡힌 성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이른바 '마른수건 짜기'다. 전 분야에 걸쳐 조금이라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할 때다.

11일 안형근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다른 설비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수용성이 중요하다"며 "정수장이나 폐수처리장 등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환경기초시설들의 유휴부지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다면 의외로 많은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게다가 24시간 가동되는 정수장 등의 경우 에너지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 규모가 작은 만큼 크고 작은 수변구역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앞당기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흥정수장에는 태양광 연계형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있어 낮에 발전해서 저장해 둔 재생에너지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사진 이의종


◆설비효율향상 위한 기술개발 속도내야 = 정부는 2030 NDC 이행 계획을 수립하면서 수소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수소 등 청정에너지 부문에서 400만톤 추가 감축을 목표로 내세웠다. 청정수소 발전비중을 지난해 0%에서 2030년 2.1%, 2036년 7.1%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자리 수에 불과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인건 분명하다.

게다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그린수소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의 '수소 항만·산업단지 연계를 위한 인프라 구축 및 관련 R&D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잠재량의 부족으로 해외 청정수소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1일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은 "무탄소 에너지인 그린수소의 경우 가능한 빠르게 공급량을 늘려야 관련 설비의 효율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이 경쟁적으로 일어난다"며 "한국이 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하지 않아 생산단가가 높다는 이유로 대량수입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고착시켜서는 안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모아 그린수소 생산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시화호조력발전소에서는 그린수소 생산 시설로 거듭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일대에 있는 시화호조력발전소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수차발전기 10대를 보유 중이며 연간 발전량은 552GWh다. 이는 50만명이 1년간 사용하는 양이다.

조력발전은 조석 간만 시 낙차에서 발생하는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이다. 시화호조력발전소에서 밀물 때 낙차를 이용해 생산하는 전력량은 연간 석유 86만2000배럴, 이산화탄소 31만5000톤 저감 효과를 갖는다.

시화호조력발전소 인근에는 육·해상태양광 풍력발전 해수열(조력발전소를 통해 유통되는 해수특성을 이용해 냉난방 설비에 적용) 등도 함께 운영 중이다. 이른바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다. 여기에 대부도 초입 방아머리에 있는 풍력발전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물을 전기분해한 뒤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시설(안산 수소 인프라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물에 전기를 가하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는데 이를 통해 고순도의 수소를 얻을 수 있다. 수전해 방식은 유일하게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방법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산 수소 인프라 시설이 구축되면 하루 최대 244kg의 수소(넥소 50대분)를 생산할 수 있다.

11일 주인호 한국수자원공사 기후탄소사업처장은 "수전해 시설을 활용한 그린수소생산을 위해서는 꾸준한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며 "이미 우리가 가진 자원들을 활용해 2050탄소중립 달성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수소 = 수소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그레이 블루 그린 등으로 나뉜다. 그레이수소의 경우 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물에 함유된 수소를 추출한다.
블루수소는 화석연료 개질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거나 제거한 경우다. 그린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수소다.

■수열에너지 = 물의 열을 히트펌프를 사용해 변환시켜 얻는 에너지를 말한다. 물의 온도에너지를 직접 또는 열펌프로 회수해 건물 냉난방과 급탕에 이용한다.
물의 온도에너지를 이용해 냉방 시 건물 내의 열을 수자원으로 방출하고 난방 시에는 수자원으로부터 열을 취득해 실내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탄소중립 실전편" 연재기사]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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