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초강경 대응에 효과는 '미지수'

2023-08-07 11:14:07 게재

당정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가중처벌 논의 … '사회적 외톨이' 대책 마련 시급

최근 소위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면서 시민들 사이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초강경 대처' 지시 이후 당정을 중심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각종 형벌 강화책이 거론된다. 하지만 학계를 중심으로 묻지마 범죄를 개인 일탈로 치부해 엄벌에 처하는데 그치지 말고 사회적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신림역과 경기도 성남 서현역에서 잇달아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당정을 중심으로 '묻지마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이처럼 발빠른 정부여당의 움직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초강경 대응 주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6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일대에 경찰특공대와 장갑차가 배치돼있다. 경찰은 살인을 예고하는 글이 연이어 게시되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인파 밀집 지역에 경찰특공대와 장갑차 등을 배치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신림역에서 지난달 발생한 흉기난동과 같은 '묻지마 범죄'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유관 부처에 초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틀 만에 분당 서현역의 AK플라자 백화점에서 또 유사 사건이 발생하자 재차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당정 대책회의 열고 대책 마련 = 이후 국민의힘과 경찰청은 지난 4일 '묻지마 범죄' 관련 대책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전문가 의견이나 관련 부처 의견을 나눈 이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 문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2개의 법안이 제출돼 있다.

이날 입장문을 낸 법무부도 "미국 등과 같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사형제와 '병존'하여 시행하는 입법례 등을 참조해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존폐 결정과 무관하게 형법에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것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수형자의 생이 다할 때까지 무기한으로 교도소에 가두는 형벌로 사형제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형벌이다.

당정은 이외에도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하고, 다중 응집장소에 대한 가시적인 순찰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유통인구가 많은 250여곳을 분석해 경찰력을 배치하고 흉기 소지 등 강력범죄에 대해 물리력을 적극 행사하기로 했다. 또 범죄 예고 글에 대한 범인 특정 수사를 실시하고 관련 가짜뉴스에 있어서도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검경은 살인예고 글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을 내놨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청구 등의 과정에서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또 단순 협박죄보다 더 중한 처벌을 받는 혐의 적용을 적극 검토한다. 경찰청은 6일 오후 6시까지 전국에서 모두 54명의 살인예고 글 작성자를 검거했다.

◆사회적 고립 '외톨이' = 정부 강경대응 분위기 속에서 학계를 중심으로 가중 처벌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잇단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외톨이'라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14명의 사상자를 낸 서현역 사건 범인 최 모씨는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나 특목고 진학 실패 뒤 일반고를 자퇴하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환경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발병으로 이어졌다. 최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난 2일 남긴 인터넷 게시글에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곧 다른 세계로 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씨에 앞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정유정·조 선의 경우도 유사하다.

정씨는 불우한 성장 과정·처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지난 5월 과외앱을 통해 만난 20대 여성의 집으로 찾아가 흉기로 살해했다. 범행 전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내가 크게 일을 만들어버리면 나도 죽어야 돼"라는 말을 남겼다. 검찰 조사에서 정씨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인 조 선은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전과 3범에 소년부 송치 전력이 14건이나 있는 그는 체포될 당시 "열심히 살아도 안 되더라고. X 같아서 죽였습니다"라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국내 고립 청년 증가 = 학계에서는 치열해지는 경쟁과 양극화 탓에 분노와 불만으로 인한 범죄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로 앞서 먼저 묻지마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 오른 일본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선 이를 '지나가던 악마가 저지른 사건'이라는 뜻의 '토오리마 지겐'이라 부른다.

현지 전문가들은 토오리마 지겐에는 일본의 사회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다. 일본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커진 빈부격차,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고독사와 같은 일본 사회의 문제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 범인들이 경찰에 진술한 범행 동기는 "삶에 지쳤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다" 등으로 유사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은둔·고립 청년은 약 6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 5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19~34세 청년 1077만6000명 가운데 고립 청년 수는 53만8000명(5%)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명당 5명의 청년들이 사회와 단절된 셈이다.

이는 2019년 실시한 직전 조사 당시 33만4000명(3%)보다 20만명 이산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 양상 변화로 고립 청년이 늘어났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정부도 최근 은둔·고립 청년을 대상으로 첫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앙정부 차원의 은둔·고립 청년 대책은 사실상 없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의료기관에서 감지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사회 방위 차원에서도 이런 사람들에 대해 이제 가족이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니 국가 복지 차원에서 개입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은둔형 외톨이나 돌발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면서 "이들에 대한 가족과 이웃 등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고 정부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 원인과 유형을 정확히 파악해 효과 높은 형사 정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재 묻지마 범죄 관련 통계는 대검찰청이 2017년 국정감사 때 제출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270건'이라는 자료가 전부다.

장세풍 오승완 박광철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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