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윤-한 갈등…친한 “이러다 다 죽어”
24일 만찬서 국정현안 논의 뒷전, 식사만
“대통령 불행, 국정 파탄, 여당의 패망 예견”
여권 투톱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이의 갈등이 선을 넘었다. 민심이 여권을 떠나가는데, 두 달 만에 만난 투톱은 대책을 논의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강한 탓이다. 국정을 책임진 투톱이 갈등에 빠져 국정 현안을 외면한다면,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권 내에서 “이러다 다 죽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여권에서는 전날 이뤄진 여권 지도부 만찬이 ‘빈손 회동’ ‘맹탕 회동’이었다는 평가가 나오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걱정이 쏟아졌다. 두 달 만에 성사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동을 앞두고 여권은 △의·정 갈등 장기화 △김건희 여사 둘러싼 의혹 증폭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채 상병 특검법) 대응 문제 등으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머리를 맞대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회동에서 체코 원전 수출 얘기만 늘어놨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현안 논의를 위해 요청한 독대는 거절했다. 30여명이 함께한 만찬 자리는 의·정 갈등이나 김 여사 문제 같은 민감한 현안이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여당쪽 참석자는 “위기 의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식사자리였다”고 촌평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말했고, 대통령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표현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대통령실측에 재요청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 대표 스스로 (윤 대통령이) 믿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한 대표를)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독대를 하냐”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갈등에 빠져 국정을 외면한다면 국민의 실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20%)와 국민의힘 지지율(28%)은 이미 윤석열정부 들어 최저치(한국갤럽, 10~12일,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기록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의·정 갈등을 해결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의료 위기가 가중되고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면서 국민의 화를 돋우고 △국민의 지지가 높은 쌍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또다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해진 전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SNS를 통해 “지금 국면은 정권이 브레이크 파열 상태에서 하향 질주하는 형세”라며 “이 상황에서 예견되는 것은 대통령의 불행, 국정의 파탄과 여당의 패망, 좌파의 재집권”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25일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만나 국정은 논의하지 않고 비싼 고기만 먹었다는 보도를 접하는 국민은 무슨 생각이 들겠냐”며 “이몽룡이 변 사또 생일상에서 읽었다는 ‘금준미주천인혈’(금술잔에 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 ‘옥반가효만성고’(옥쟁반에 담긴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땀)란 시를 떠올리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친한(한동훈) 의원은 “대통령이 의정 갈등이나 김 여사 문제를 계속 외면한다면 대통령도, 당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정말 이러다가는 다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