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서울교육감 선거, 정책경쟁 나서라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진영후보 간 단일화가 이뤄져 양강체제로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최종 등록은 4명이 했지만 진영별 통합후보가 추대되면서 진보진영의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보수진영의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 맞대결구도가 된 것이다.
현행 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개입하지 못하게 돼 있어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후보가 난립하고 선거결과도 단일화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이 반복돼왔다. 이번 선거도 비슷한 양상이다. 조희연 전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선고에 따라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보궐선거로 ‘조희연 10년’을 지키려는 진보진영도, 교육감직 탈환을 노리는 보수진영도 준비가 안된 상태다. 수많은 예비후보가 난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진영별 단일화가 이뤄져 유권자 선택의 복잡성이 줄어들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돈 싸움으로 전락한 교육감 직선제
교육감 직선제가 돈 싸움으로 전락한 것을 씁쓸한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수만 80만명이 넘고 공립학교 교원과 교육청 공무원 인사자리도 5만여개나 된다. 예산만 12조원이다. 막강한 권한이 교육감 손 안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보니 2022년 지방선거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35억2560만원, 조전혁 후보는 34억2501만원, 박선영 후보는 20억6312만원이나 썼다. 교육계에서는 “60억원이면 당선, 50억원이면 낙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국가에서 보전 받은 선거비용 이외에 강남 아파트 두채 값은 써야 한다는 얘기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육감을 뽑는 선거지만 선거 양상은 ‘깜깜이’ 그 자체다. 유권자들은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고 투표장에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번 교육감 선거 무효표는 90만3227표로, 함께 치른 시·도지사 선거 무효표의 2.6배나 됐다. 보권선거가 평일에 치러질 경우 투표율은 10~20%대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지난 10년 진보교육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윤석열정부 교육 정책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선거를 한달 앞둔 시점에서 드러난 표심은 이번 선거를 ‘윤석열정부 교육정책 심판’으로 보는 듯하다. 기독교방송(CBS)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윤석열정부의 교육정책 평가’라는 응답이 40.7%로 가장 많았고 ‘조희연 전 교육감의 교육정책 평가’라는 응답은 32.0%였다. 조 전 교육감에 대한 긍정평가는 41.1%, 부정평가는 43.7%, 윤석열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부정평가는 59.0%, 긍정평가는 30.8%였다.(9월 8~9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 이런 여론조사만으로 보면 진보가 우세한 것 같지만 결과는 아직 예측불허인 상황이다.
본선에 접어들면서 양 진영의 교육정책에도 관심이 쏠린다. 주요 현안에서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역사 교과서 문제와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교권보호 문제 등이 이번 선거의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논쟁의 정점에 설 가능성이 크다.
진보후보는 윤석열정부의 역사왜곡 논란이 교과서 기술에 영향을 끼친 부분을 쟁점화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친일인사 및 이승만정권 옹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서술 축소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1·2 교과서에 대한 검정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수후보는 ‘조희연 10년’ 청산에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조 전 의원은 “지난 10여년간 서울 교육은 좌파세력에 의해 황폐화 됐다”며 이념으로 오염된 학교를 정화할 적임자는 자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수후보는 ‘혁신교육’으로 정리되는 ‘조희연 10년’의 주요 정책 문제점을 집중 공략할 태세다.
정치구호보다 교육정책으로 승부 걸어야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은 깜깜이 선거에서 탈피하는 것은 후보들의 몫이다. 돈 싸움으로 전락한 교육감 직선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후보자 개인의 선거운동을 최소화하고 TV토론회 기회를 늘려 유권자들이 교육 정책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의 공천 과정만 없을 뿐 진영 간 대결이라는 정치색이 존재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선거가 이미 정치적 행사로 이념을 표방하지 않는 후보는 당선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헌법이 명시하는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위해 정치구호보다는 교육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김기수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