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도 진술거부권 보호 대상”
<손도장 거부>손도장>
소란·무인거부 등으로 ‘금치 20일’ 징벌
1·2심 “부당한 징벌 처분” … 대법, 확정
수용자가 교도소 규율 위반 행위를 했다고 적은 교도관의 적발 보고서에 손도장(무인) 찍기를 거부한 것은 징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손도장이 보고서 내용과 함께 ‘진술’을 구성해 헌법에 보장된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 거부권의 대상이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수용자 A씨가 대구교도소장을 상대로 낸 ‘금치 20일’ 징벌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3월 2일 대구교도소에서 다른 수용자들과 이불을 정리하는 문제로 다투다가 욕설을 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
이를 발견한 교도관이 적발 보고서를 작성해 발부한 뒤 A씨에게 손도장으로 무인(규율위반 행위가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을 찍으라고 시키자 A씨는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고함을 지르며 2차례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도소장은 최초 소란과 2차례 거부를 각각 사유로 금치 20일 징벌을 내렸다.
금치는 교정시설 수용자에게 가하는 가장 무거운 징벌로, 독거실에 수용하고 접견·서신 등 처우를 제한하는 조치다.
A씨는 “보고서 기재 내용을 인정할 수 없어 무인을 거부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의 쟁점은 교도관이 수용자인 A씨에게 무인하도록 지시한 것이 부당한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징벌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봤다.
1심은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보고서에 무인하게 하는 것은 자기부죄(증인이 자신이 형벌을 받을 증거를 제공하는 것) 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2심도 “형집행법에는 교도관이 적발 보고서의 작성 과정에서 수용자에게 무인 또는 서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A씨에게 보고서에 무인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진술거부권 침해라고 봤다.
헌법 제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무인의 의미는 거기에 기재된 규율 위반행위가 사실임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보고서의 기재 내용과 일체가 돼 언어적 표출인 ‘진술’을 구성하므로 헌법상 진술거부권의 보호 대상에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 “규율 위반행위는 형집행법상 징벌 사유에 해당할 뿐 아니라 형법상 모욕죄 등과 같은 형사책임에 관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A씨는 보고서에 기재된 행위를 형사상 불이익한 진술로서 부인하며 서류에 무인할 것을 요구하는 교도관 지시를 거부할 헌법상 권리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