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의 낚싯대에 걸린 델타 빙어
이달 초, 거대 산불이 로스앤젤레스(LA)를 휩쓸면서 최소 28명이 사망하고 10만명 넘는 사람들이 대피해야만 했다. 이 화재는 아직도 완전 진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제적 손실 규모만도 이미 2500억달러를 훌쩍 넘겨 미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자연재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취임한 지 불과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 금요일(24일) 트럼프 대통령은 LA 화재 현장에 직접 방문해 관련 정치인들과 피해 복구를 논의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분노는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화재를 악화시킨 산타 애나(Santa Ana) 강풍도, 비정상적으로 건조했던 날씨도 아니었다. 피해 지역에서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고 있던 주택 개발로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지역이었던 점을 주목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물고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8일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쓸모없는 ‘빙어’라는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LA 지역의 물을 빼앗았다고 비난했다. 덧붙여 뉴섬 주지사가 수자원 복원 사업을 승인하지 않아 산불 피해가 극심했다고 맹렬하게 비난했다. 이에 뉴섬은 트럼프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사업을 언급했다며 반박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광활한 습지인 새크라멘토-산호아킨 강 삼각주에서만 발견되는 작은 어종인 델타 빙어(delta smelt)에 관한 보호 조치로 인해 LA 일부 지역의 소화전이 말라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가 컸던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의 소화전 문제는 수압 및 기타 인프라 문제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동안 델타 빙어 규제 비판한 트럼프
델타 빙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발표했던 메모 중 하나의 소재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무부와 상무부에 델타 하구에서 더 많은 물을 캘리포니아 곳곳에 보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물고기보다 사람 우선: 남부 캘리포니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급진적 환경보호 중단”이라는 제목의 이 메모는 빙어 보호와 LA 화재를 결부시키는 그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가 델타 빙어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에너지 정책 및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앤이뉴스(E&E News)에 따르면, 거의 10년 동안 트럼프는 델타 빙어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규제를 풀면 캘리포니아의 심각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이 캘리포니아의 가뭄을 가속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더 나아가 이 문제를 민주당의 사적 이익 제한 기조와 관련이 깊다고 공격하고 있다.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비롯한 여러 공화당 정치인들까지 이러한 비난에 합세했다. 그녀는 2011년 연설에서 델타 빙어를 보호하려는 조치들이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삶을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주 정부가 고작 3인치짜리(7㎝) 물고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명줄인 물을 빼앗고 있다.”
우파 진영에서는 왜 이렇게 한뼘도 되지 않는 이 작은 물고기에 집착해 비난할까? 델타 빙어는 새크라멘토-산호아킨 강 삼각주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이곳을 제외하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학의 생태학자인 앤드류 라이펠에 따르면 수천년 동안 델타 빙어는 먹이사슬 전반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전담하며 델타 지역 생태계의 핵심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원래 이 빙어는 델타 하구에서 가장 흔한 어종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농경지에서 유출된 물로 하구의 수질이 악화되면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델타 하구는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농장과 도시의 중요한 물 공급처가 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이 물고기들은 물 흡입 필터에 빨려 들어가면서 죽어갔다. 더 큰 문제는 수십년 동안 하구의 물을 끌어다 쓰는 과정에서 수위 온도 염도 등이 변화하면서 빙어의 서식지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다는 점이다.
결국 1990년대 델타 빙어는 연방 멸종위기종보호법에 따라 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2009년에 캘리포니아는 이 물고기를 멸종위기종으로 격상시켰지만 그 이후로도 개체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최근 몇년 동안 델타 하구의 야생동물 조사에서 이 빙어를 단 한마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야생에는 대략 100마리 미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능적 멸종’ 상태라고 보고 있다. 즉, 너무 희귀해서 생태계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 종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에서 델타 빙어를 양식하고 있다.
환경규제 공격하기 위한 빌미일 뿐
현재 델타 빙어는 주법과 연방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다. 이러한 보호규정은 물고기에게 충분한 담수를 공급하고 물고기가 흡입 필터에 갇히는 사태를 줄이기 위해 델타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시기와 양을 일정 정도 제한한다. 이 규정에 따라 더 많은 담수가 바다로 흘러나오게 된다. 담수의 증가는 삼각주에서 바닷물이 내륙으로 유입되면서 식수 및 농작물을 위협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농부들은 특히 가뭄이 심할 때 이러한 제한을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트럼프와 공화당 정치인들은 수년 동안 이 규제를 비판해왔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농부들이 겪는 어려움을 자연스레 물고기 탓으로 돌렸다. 이미 공화당은 오랫동안 멸종위기종보호법을 비판해왔다. 특히 트럼프는 환경보호와 관련된 규제 완화를 약속한 공약으로 지난 선거에서 승리했다.
결국 이 물고기를 향한 트럼프의 적대감은 물고기에 대한 것이 아니다. 델타 빙어의 논쟁은 규제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트럼프가 LA의 화재를 빌미로 바이든 전 대통령,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리고 규제를 비난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고기의 멸종을 막기 위한 델타 하구로부터의 물 제한은 LA의 재앙적인 화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게다가 도시에 공급되는 물의 대부분은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공급되지도 않는다. LA에 물 공급원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수자원 기관은 현재 기관 역사상 가장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0년 캘리포니아주정부는 델타 하구에서 더 많은 물을 중·남부 캘리포니아로 보내려고 시도하는 트럼프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소송에서 캘리포니아주정부 측에서는 트럼프의 조치가 델타 빙어와 치누크 연어를 포함한 토종 어류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토종 어종도 멸종의 길 가고 있어
실제로 델타 빙어의 멸종은 훨씬 더 광범위한 추세의 일부분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에서 토종 물고기의 80%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즉, 델타 빙어가 더 빠른 속도로 멸종하고 있을 뿐이지 모든 캘리포니아 토종 어종이 델타 빙어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7월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은 샌프란시스코 삼각주의 긴 지느러미 빙어(longfin smelt)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다만 하구의 수질개선은 기존 개체들의 생존을 도울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델타 빙어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감소 추세에 있는 치누크 연어와 긴 지느러미 빙어를 포함한 멸종위기종들의 생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공화당 정치인들은 델타 빙어를 꼬투리 잡아 규제 완화의 상징적 존재로 몰아가려고 한다. 최근 트럼프는 델타 빙어가 실제로 멸종위기종인지에 관한 의심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그의 환경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긴장감을 감출 수 없다. 델타 빙어의 사연이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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