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전성기 미술의 키워드는 인간이었다
정광균의 80일간 유럽미술관 산책
르네상스 이후의 고전, 모던미술과 명작 이야기 (2)
필자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80일간의 유럽미술 여행’을 다녀왔다. 마치 동화 속의 파랑새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처럼 설렘도 컸지만 생각보다 길어진 ‘나 홀로 자유여행’이라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유럽 12개국의 주요 미술관과 피카소 미로 달리 모네 르누아르 샤갈 고흐 클레 마그리트 등 거장들의 개별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미술관 산책은 필자에게 미술에 대해 광각으로 사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었다. 유럽미술관 산책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사적 인문학적 견지에서 미술을 예술로써 지각하고 인정받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의 고전 미술, 모더니즘 미술, 그 이후의 현대 미술을 대상으로 거장들의 명작이야기를 필자의 프리즘으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최고의 비평가인 독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미술에 대한 이해와 감상, 더 나아가 탐구에도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했다.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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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한 르네상스 미술은 피렌체에서 꽃을 피운 후 문학 예술 사상 등 전방위적인 문예부흥 운동으로 발전했다. 미술사의 아버지인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기를 1400년대는 콰트로첸토, 1500년대는 친퀘첸토로 구분했는데 16세기 초를 가장 위대한 시기로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천재 미술가와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 베네치아 거장들이 활약한 시기다.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피렌체에서 꽃피워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만개한 전성기 미술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전 유럽을 문예부흥 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전성기 미술은 어떠한 점이 위대한가? 첫째 미술의 대상은 신화적 인간에 기반한 르네상스 초기 미술보다 현세적 인간이 중심이 됐다. 둘째 미술의 주체는 불세출의 천재 미술가와 거장들이 주도했다. 셋째 미술의 방법론은 후마니타스, 즉 전인적 인본주의 정신과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 등 인문과 과학의 결합이라는 한 차원 높은 혁신을 통해 고전미술을 정초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미술은 그리스·로마미술의 재발견
르네상스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롤 모델인 그리스·로마미술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미술사를 간략히 살펴본다. 원시시대 미술은 알타미라 라스코동굴벽화를 본 대로 그렸으며 신석기시대 원시인들은 하늘에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어 암석화나 고인돌 등에 기호, 암호, 상징 등을 반영했다. 고대이집트 미술은 파라오의 영생을 기원하는 관념에 따라 아는 대로 그렸다. 그러나 그리스·로마미술은 두가지 관점이 달랐다. 첫째는 내세관이다. 원시시대는 샤머니즘(잡신), 고대이집트는 태양신(파라오), 그리스·로마시대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인간 신, 중세는 유일신 그리스도 중심의 내세관이었다. 그러나 중세 붕괴 후 르네상스 시대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인간을 돌아보게 됐다. 둘째는 인간관이다. 원시 고대이집트 중세미술에 인본주의와 인간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헬레니즘 미술은 인간의 이상미를, 이를 승계한 로마미술은 제국 미술로 변모했으나 인간이 대상이었다. 미술사가 빙켈만은 ‘그리스 미술 모방론’에서 로마미술을 그리스·헬레니즘 미술의 모방자 양식으로 평가했다. 그렇다. 르네상스 미술은 그리스·로마미술의 재발견이고 전성기 미술은 그리스·로마미술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로마미술과 르네상스 전성기 미술은 결이 다르다.
필자는 지난해 6월 29일부터 7월 13일까지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 현대미술관, 미켈란젤로 박물관 등을 시작으로 베네치아는 아카데미아 미술관, 페니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로마는 바티칸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보르게세 미술관 등을 방문하며 전성기 미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물론 피렌체(전편 게재) 파리 등지에도 분산돼 있어 별도 기간에 방문했다. 전성기 미술은 초기 미술과 같이 교회 건축물과 회화가 중심이었다. 건축은 동시대 북유럽의 고딕양식 교회가 수직적이라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 교회와 건축물은 수평적이었다. 이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3대 거장 등의 명작들은 그들이 지역 군주와 교황의 초청으로 옮겨 다녔기에 피렌체 밀라노 로마 파리 등에 분산돼 있었다.
여담이지만 유럽미술관을 둘러보는 방법은 유럽을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2가지 방법이 있다. 가령 전자는 런던에서 시작해 파리-로마-아테네-카이로로 나오는 여정으로 이는 17세기 영국 등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문명국의 뿌리를 찾아 문물을 익히는 그랜드 투어 여정이기도 했다. 전자는 데자뷰처럼 싱겁고 힘이 좀 드는 편이고 후자는 거꾸로 여정으로 위로 갈수록 신기하고 좀 편하게 느껴진다. 과거 문명국과 현재의 선진국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술 여행이나 인문 여행이라면 후자가 바람직하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파리올림픽 때문에 마드리드에서 시작해 런던으로 나오는 일정을 짜서 지그재그식이라 고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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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거장 등 꽃피운 전성기 미술
르네상스 초기 미술은 혁신적인 미술가들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주도했다면 전성기 미술은 휴머니즘 정신과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천재 미술가와 거장들이 주도했다. 3대 거장 등은 형(형태)의 기초인 데세뇨(disegn 선)를, 베네치아 거장들은 색(채색)의 기초인 콜로레(colore 색)를 강조하면서 르네상스 미술을 정점에 올려놓았다. 교황과 지역 군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얻기 위해 3대 거장들을 경쟁시키고 그들은 불후의 걸작을 남기기 위해 영혼을 불태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 출신으로 회화 조각 건축 미술가이면서 해부학자 발명가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독신으로 살았던 천재 미술가(67세 사망)였다. 그는 산타마리아 델레 크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 우피치 미술관의 수태고지 등 평생 20여 작품만 남겼다. 하지만 2007년 영국의 네이처지는 인류 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로 다빈치를 선정했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연구하기 위해 3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하고 무려 7200쪽의 다빈치 노트를 남긴 메모광이며 관찰왕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자부심인 ‘모나리자’(그림2)는 방문객의 70%가 관람하는 세계 최고의 명작이다. 도난 경력, 천문학적인 가격(40조원) 등의 유명세로 그림 앞은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까치발로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와도 자랑이다.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귀족인 조콘도의 부인(Mona), 즉 리자(Lisa) 부인을 그린 초상화다. 눈썹이 없어도 모나리자의 미소는 어디서 보아도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 신비스럽다.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 외에도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 눈꼬리 입꼬리 윤곽선을 연기처럼 흐릿하게 처리한 것은 혁신의 백미다. 유화로 그린 피라미드형 구도, 중세에는 없었던 풍경까지 반영한 르네상스 회화의 정수이며 완벽한 명작이다.
미켈란젤로는 다빈치와 같은 피렌체 지역 출신으로 그보다 23세 아래고 45년 더 산 천재 미술가(89세 사망)다. 그는 조각 회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만능인으로, 바사리는 화가로서 스승인 그를 예술의 신으로 극찬하고 다빈치는 천국에서 보낸 신에 가까운 사람으로 칭송했다. 누가 더 대단한지 모호하다. 미켈란젤로는 23살에 성베드로대성당에 놓일 피에타를 완성했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서는 시청이 의뢰한 다비드상 제작을 놓고 다빈치와 경쟁하여 쟁취하고 3년 후에는 베키오궁의 500인방 좌우 벽화에 자신은 카시나 수중전투, 다빈치는 앙기아리 기마 전투로 경쟁했다. 37세에는 바티칸 궁내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4년만에 완성했다. 그로부터 24년 후에는 벽면에 ‘최후의 심판’을 6년 동안 그렸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그리스도가 심판한다는 성서 내용으로 천국 인간계 연옥 지옥에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391명이다.
원래 성인, 성녀들을 나체로 그렸으나 논란이 일자 23년 후 제자인 볼테라가 중요 부위를 가리개로 가렸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에는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최후의 심판에는 그리스도상 아래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진 순교자 성 바르톨로메오에 자기 얼굴을 그려놓았다. 예술가 자부심이고 저작권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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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학당, 르네상스 인문주의 미술 진수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중부지역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난 금수저 출신의 천재 미술가(37세 사망)다. 바사리는 16세 때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라파엘로를 ‘화가의 왕자’로 불렀다. 21세 때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있었던 피렌체로 이주 후 그들의 미술에 영향을 받아 피렌체 유파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변용 시스티나 성모 등의 명작을 남겼는데 아테네 학당(그림1)은 특별하다. 이는 율리우스 2세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 벽면에 그린 프레스코화로 상상화다. 중앙의 플라톤(다빈치 얼굴)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이 땅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플라톤은 본질이 이데아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임을 상징한다. 그 밖에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미켈란젤로 얼굴) 등이 있고 아펠레스라는 그리스 화가(라파엘로 얼굴)도 그려 넣었다. 그리스 사상가와 르네상스 3대 거장 등을 접목해 현세적 인간으로 재현한 인문주의 미술의 진수다.
베네치아는 중세 이래 생선 소금 목재 노예 등의 무역업으로 성장한 해상 강국이었다. 제4차 십자군 전쟁 때는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할 정도로 막강했으며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 후에는 비잔틴 미술가들의 유입 등으로 르네상스 전성기의 주역으로 부상하였다.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 베네치아 거장들은 형태 소묘 등을 중시한 피렌체 유파와 달리 빛과 색채를 중시했는데 티치아노는 특별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가 떨어트린 붓을 손수 주워 줄 정도로 성공한 화가(86세 사망)였다. 다빈치가 다방면의 천재이기에 다빈치 대신 3대 거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르비노의 비너스’(그림3)는 그의 대표작이다. 우르비노 공의 젊은 부인이 침대의 흰 시트에 누워 요염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듯한 자세는 에로틱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베네치아는 누드화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르네상스 전성기 미술의 키워드는 인간이었다. 천재 미술가와 거장들은 미술의 기본인 형과 색을 발전시키고 서사를 입히는 등 각자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으로 위대한 예술가 시대를 열었다. 현세적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본 대로 그리는 모방과 재현의 고전미술을 정초했다. 이제 전성기 미술의 파고는 북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의 르네상스 후기미술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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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균 칼럼니스트
전 주이집트 대사
관광학박사
문화예술칼럼니스트
정광균 칼럼니스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제19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주토론토 총영사와 주이집트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외교관 은퇴 후에는 학문의 길로 전환해 한양대 관광학과에서 DMZ 관광개발과 관광자원 분야를 연구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서울대 관광경영학과 객원교수와 한양대 관광학과 및 국제관광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자로서도 활동했다. 현재는 추계예술대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서양미술사 분야의 학위를 준비 중이다. 동시에 한국미술협회 산하 일원회와 현대사생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화가로서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국제적 시각, 관광학 전문가로서 학술적 접근, 현장 예술가로서 실제적 안목, 서양 미술사 연구자로서 전문성을 두루 갖췄다. 이러한 다면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단순한 여행기나 미술사 해설을 넘어서는 심도 있는 연재를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