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운명의 날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 무역전쟁으로 비화한 가운데 미국과 동맹국간 관계가 악화되고 잘 나가던 미국경제가 소비 위축과 물가 상승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등 역풍이 일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이 전통적으로 표방했던 ‘세계의 경찰’ 역할과 자유무역체제를 거부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가 무차별적으로 전개되면서 우방국인 캐나다를 필두로 멕시코 중남미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미국산 불매운동이 거세게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여행 취소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겨냥, 테슬라 차량과 충전소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경제 소비 위축과 물가 상승으로 경기침체 우려 커지는 등 역풍 일어
관세 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연방 공무원 감원 등으로 대변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책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슬로건 아래 취임 후 두달 가까이 강력하게 추진돼왔다. 그러나 트럼프 1기 때 트럼프를 보좌했던 참모들조차 비판에 나서는 등 부정적인 반응이 부각되고 있고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캐나다 및 EU 등 우방과 무역 전쟁을 유발하는가 하면 트럼프를 기피인물로 만들고 있다. 1기 때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조차 “자유무역이 상품 가격을 낮추고 삶의 질을 개선한다”며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주요 타깃인 중국은 즉각 보복관세 부과와 희토류 수출통제에 나서는 등 미국의 조치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유럽에서도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압박이 ‘자강론’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들은 최근 브뤼셀에서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총 1500억유로(약 235조원) 규모의 방위비를 조성하는 재무장 계획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특히 관세 부과와 유예를 반복하는 트럼프의 오락가락 행보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경제가 위축되고 외국자본이 중국으로 향하는 등 오히려 중국 영향력이 커지는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앞으로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본격 대두될 경우 트럼프 주요 정책들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예상치 못했던 미국내 달걀 품귀현상도 호기롭게 시작한 미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마구 뒤흔들고 있다. 계란은 사실상 미국인의 주식이나 다름없다. 그런 달걀 가격이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산란닭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올들어 2~3배 넘게 폭등했다. 그러자 미 행정부는 부랴부랴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 계란 수출을 긴급 요청했다. 상호 의존성이 높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보호주의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세운 계획을 차질없이 밀어붙일 것이 확실시된다. 관세전쟁이 심화하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가 불가피하다.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 여파가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 미국내 물가 불안심리가 크게 팽배해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종식으로 유가하락을 유도하거나 공무원 감축 등 재정지출 축소를 통해 인플레를 완화하는 한편 관세는 협상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 기간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다음 달 2일 교역국들에게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개별국가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하겠다고 예고했다. 또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의 케빈 헤셋 위원장은 “한국 등과 고질적인 무역적자가 발생했다”고 언급, 미국이 한국을 또다시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이로 미루어 트럼프 1기 때 개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측 압력으로 재개정되거나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트럼프는 “나는 항상 유연성을 가질 것이나 일단 시작하면 거의 유연성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4월 2일은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 무능한 미국 지도자들에 의해 빼앗긴 많은 것들을 되찾는 아주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정부는 불과 10여일 남은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 기간에 트럼프의 유연성을 기대하면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하겠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