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폭염, 정신질환자에겐 더 위험할 수 있어”

2025-03-17 13:00:02 게재

미래세대 기후불안 대응 지침 필요…기후위기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회 체제부터 변해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7차 평가 보고서(AR7) 실무그룹 평가 보고서에 기후 정신 건강에 관한 사항이 포함될 전망이다. 이 보고서는 전세계 정책 입안자들에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각 국가별 과학자 수천명이 참여한다.

그만큼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영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리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주요 국제기구들도 기후위기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고 경고를 한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기후위기 인식에 기반한 치료진 확대 등 새로운 문제 제기가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번 환경 면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살펴봤다.

“기후병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정립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이상기후로 인해 영향을 받으면 더 문제가 커지는 등 보건·사회학적으로 여러 다른 점들이 포착되고 있죠. 이 문제를 우리 사회는 그동안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감수성이 떨어진 거죠.“

2월 20일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등과 함께 기후정신건강연구회를 발족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미국 정신과의사와 심리학자들이 힘을 모아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회를 만들고 여러 활동을 해왔죠. 하지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미진한 편이에요. 기후위기는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서울 영등포구 ‘별의친구들’에서 이루어졌다. 별의친구들은 △경계선 지능을 포함한 자폐 스펙트럼 △조현 △우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미래 세대가 자신이 가진 강점을 통해 사회 참여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성장 공간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 등록 대안교육기관인 ‘성장학교 별’도 함께 운영 중이다. 전통적인 교육 틀을 벗어나 청소년이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하는 배움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청소년은 ‘어울림 속에서 성장하는 힘’을 기르고 ‘나 다운 삶’을 개척해 나간다. 김 교수는 성장학교 별 교장이기도 하다.

김현수 교수는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이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장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운영된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을, 2015년 중앙심리부검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맡아 자살예방사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서울 코비드심리지원단 단장을 하면서 기후와 환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회에 기후위기와 정신건강 세션을 만들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괴물부모의 탄생’(2024 아시아 북어워드 수상)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노경선 저작상 수상)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드립니다’(2021 책씨앗 최고의 책 성인 분야 수상) 등이 있다. 사진 이의종

복용법 등 생각지 못한 부분에도 영향

“기후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이 있지는 않아요. 기후로 인한 정서 상태의 변화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의료계에서는 기후변화로 사람 기분이 변한다고 해서 새로운 특정 질환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기후로 인한 불안이나 우울 등의 상태 변화는 분명히 있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이를 인정하기 시작했죠. 기후우울증이라는 공식 질병명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관련 증거들이 더 많이 모아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관련 정부 정책이나 사회적 인식 변화는 굉장히 더디죠.”

지구온난화하면 우리는 흔히 폭염을 떠올린다.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온열질환 예방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질환자들의 사망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폭염에 따른 사회적 대비가 중요한데, 사람들은 의외로 정신건강 문제와 연관을 짓지 못해요. 폭염 시 인간의 뇌에서 열을 조절하는 중추가 공격을 받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의식조절이나 행동조절에도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는 또 폭염 발생 시 약 복용에도 변화를 주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러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셈이다.

“폭염이 발생했을 때 사람에 따라 땀을 흘리는 양이 다를 수 있어요. 문제는 땀만 배출된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죠. 땀을 흘리면 무기질은 물론 평소 복용하던 약의 성분들도 함께 배출될 수 있어요. 조울증 환자가 땀으로 약 성분이 함께 배출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평소와 동일한 양으로 복용해도 체내에 해당 성분이 훨씬 낮은 상태가 돼서 재발하기 쉬울 수도 있죠. 이러한 점들을 미리 고민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정신건강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생각하도록 돕는 계몽 행사도 필요해요.”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불리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기후악당이란 기후변화 책임이 크면서도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가를 뜻한다. 국제환경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는 2024년 11월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오늘의 화석상’ 1위로 한국을 선정했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세계 150개국의 2000여개 환경단체가 모인 기구다.

호주처럼 유기적인 대응 체계 구축돼야

청소년 문제에 한평생을 헌신해온 김 교수는 미래세대들이 느끼는 기후불안에 대한 교육 자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춘기 통역사’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청소년 문제에 애정이 깊다. 공중보건의로 소년 교도소에 근무하면서 문제 행동은 ‘심리적 구조 신호’라는 점을 절감한 뒤 △게임중독 △은둔형외톨이 △학교폭력 등 청소년들의 다양한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성장학교 별 역시 김 교수가 사재를 털어 세웠다.

“아동·청소년들이 기후위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삶의 의욕을 잃는 경향이 있어요. 호주는 청소년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어느 정도 불안감을 느끼는지 조사가 되어 있어요. 기후변화로 인해 정서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때 평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지를 측정이 가능하다는 소리죠. 이를 토대로 호주 교육부나 학교 혹은 공공기관 등에서 우려할 만한 지표를 발표하면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 and Aged Care)에서 확인을 해서 진짜 상담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결을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그는 기후정신건강연구회에서 앞으로 아동·청소년의 기후불안 대응 지침이나 교육 자료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후정신건강연구회는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분석한 책 ‘기후상처’를 내기도 했다.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는 ’기후위기로 정신건강이 악화되면서 지구온난화가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정신적인 혼란으로 지구가 망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미래세대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죠. 아이들이 기후위기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아가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에 대한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 미래세대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들이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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