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무역전쟁에 9.5조달러 흔들
“관세전쟁 격화땐 경제·교역관계 전반 타격” “위스키·샴페인 넘어 상호투자 위축”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상공회의소 EU 지부(AmCham EU)는 17일(현지시간) ‘2025년 미-유럽 경제 보고서(Transatlantic Economy 2025)’보고서를 내 미국의 대유럽 관세 조치가 단순히 일부 제품의 가격상승에 그치지 않고, 미-EU 간 광범위한 투자 및 경제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과 유럽(영국 포함)의 상품 무역 규모는 약 1조30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서비스 무역도 7500억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측 기업들의 상호 투자다.
미국 기업이 유럽에서 올린 매출은 4조달러 이상, 유럽 기업의 미국 내 매출은 3조5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즉, 양측 기업의 투자가 상품 및 서비스 교역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말테 로한 암참(AmCham) EU 최고경영자(CEO)는 “상품 무역에 대한 피해도 심각하지만, 진정한 위험은 이것이 다른 경제적 연결고리까지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럽과의 무역 적자를 주요 문제로 지목하며, 상품 교역을 중심으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미국의 대EU 무역 적자는 2356억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그는 글로벌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유럽산 자동차 및 기타 산업 제품에 대해서도 25% 추가 관세를 경고한 상태다. 또한, EU의 특정 세금 및 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보복 관세 가능성도 시사했다.
EU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미국산 위스키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해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에 트럼프는 프랑스 샴페인과 기타 유럽산 알코올 음료에 20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다.
이 같은 보복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전반에 걸친 연쇄적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EU 간 무역 분쟁이 단순히 상품 무역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번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존스홉킨스대 댄 해밀턴 연구원은 “EU가 보복 조치로 서비스 분야에 세금을 부과하면, 미국의 대유럽 서비스 수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무역 분쟁의 여파가 기업의 미-유럽 간 경제 활동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유럽 해외 직접투자(FDI) 규모는 전 세계 총 투자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FDI 규모도 전체의 약 3분의 2에 달한다.
대 EU 관세로 인해 유럽에서 생산한 부품을 미국 내 계열사 공장으로 보내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이 EU로 수출되는 과정에서도 제재가 가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미-EU 간 투자 결정을 주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밀턴 연구원은 “무역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양측의 투자 관계라고 강조”하며 “기업들이 미-EU 간 투자 확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EU 경제 관계는 단순한 상품 거래를 넘어 서로의 경제에 깊숙이 얽혀 있는 투자 기반 위에 구축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유럽 내 해외 자회사 매출은 미국의 대유럽 수출액보다 4배 많고, 유럽 기업의 미국 내 자회사 매출도 유럽의 대미국 수출액보다 3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내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공정 무역’을 강조하고 있어, 미-EU 간 갈등이 단기간 내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