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 안된다
지난 13일 국회본회의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상법개정안을 가결하고 정부에 넘겼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법안이다. 즉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이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는 것이다.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도 의무화됐다. 한국증시의 고질적인 주주권익 훼손을 줄이고,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개선하려는 뜻에서 마련된 것이다.
법안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주주의 신뢰를 훼손하는 일들이 잇따라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재벌은 계열사를 입맛대로 분리하고 합병하려고 하다가 철회했다. 어떤 증권사는 시가총액보다 많은 금액을 유상증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주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러자 국내 증시에 대한 거부감과 실망이 증폭됐다. 이는 ‘국장탈출’로 이어지면서 국내 주식시장을 수렁에 빠뜨렸다. 정부여당의 요구대로 야당이 금융투자소득세 부과를 철회했음에도 효과는 없었다. 결국 한국 증권시장은 지난해 최악의 1년을 보냈다.
상법개정으로 자본시장 선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 커져
이같은 상황에서 야당의 상법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증권가에서도 환영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을 비롯해 국내외 기관투자자 및 관련 학계와 법조계 인사들이 지난해 11월 조속한 법개정 완수를 촉구했다.
반면 정부여당은 상법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이 대한민국 기업의 조종을 울리려고 한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단체도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정부도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기는 했다. 지난해 12월 2일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개정방침을 밝혔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상장사에만 적용하고 비상장사는 제외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렇지만 이마저 그 다음날 터진 계엄사태로 실종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증권가에서는 한국 자본시장을 선진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단순히 주주권 강화를 위한 ‘주주 중심주의’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화되고 정상화되기 위한 필수적이고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지배 주주의 사적 이익 극대화로 인한 일반주주의 피해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장변화다. 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상법 개정을 지지하는 듯하다가 자본시장법 개정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었다.
그러더니 이제 입장이 또다시 180도 바뀌었다. 지난 13일 국민의힘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법안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하자, 이 원장은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가 공매도 재개와 주주가치 제고에 대해 일관된 의지를 밝혀왔는데, 이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보다 훨씬 단호하고 강경해졌다. 이복현 원장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얼른 이해하기는 어렵지만어쨌든 지금 상법 개정에 큰 힘을 보태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시선은 최상목 부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쏠린다. 최 권한대행이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지 3개월도 채 안되는 동안에 여러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조차 이행하지 않는다. 그런 관성에 따라 최 대행은 이번 상법개정안도 거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경제법안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다른 법안은 특정당파의 입장에 설 수도 있지만, 경제법안은 당파를 넘어서야 한다. 오로지 한국경제의 성장과 증권시장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경제 성장과 증권시장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국증시는 침울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비교적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2기를 맞아 관세장벽을 높이는 가운데서도 예상보다 선방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최 권한대행이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한국증시는 또다시 먹구름에 덮여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최 대행은 상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를 삼가는 것이 좋겠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