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공식물가통계와 체감물가 차이는 왜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전년동월비 2.5~3%대에 비해 올해는 물가안정목표치인 2%대로 안정적인 기조에 수렴하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및 일부 서비스품목의 잇따른 가격인상으로 개별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오히려 폭등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는 오르는데 공식물가통계는 그만큼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가지 명백한 원인은 명목임금이 물가상승분만큼 인상되지 않아 가계가 주로 구매하는 상품가격의 인상에 과도하게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물가통계가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가능성도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생산기술과 대내외 경제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소비자는 보다 다양해진 상품에 대응해 빠르게 선호를 개편하고, 재화보다는 서비스 소비의 비중을 늘리면서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자국우선주의에 기인한 국제무역체계의 혼란으로 수입재화 가격이 요동치는 현실과는 다르게 통계작성 개편은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공식물가통계와 체감물가의 차이가 더욱 커졌다고 지적된다.
공식물가와 체감물가와의 괴리 커져
가계가 인플레이션에 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구매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구매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통계인 소비자물가지수는 평균적인 도시가구가 생활을 영위하는 데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단순히 가계의 생활비 지출의 변화를 측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노동자의 명목임금을 조정하거나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를 판단해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수립하거나 최저임금이나 연금수령액의 실질가치를 보전하는 데 가장 기초적으로 활용되는 지표다. 따라서 물가통계는 개인 기업 정부 등 경제내 모든 경제행위자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물가통계와 체감물가의 차이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주로 개인 소비행태의 특수성과 주관적 물가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우선 가계는 각자의 경제환경과 생활방식에 따라 주로 구매하는 품목과 가격이 다르므로 개개인이 체감하는 생활비용이 조사편의상 적절하게 선정된 대표품목군의 시장가격을 조사하고 이를 가중평균한 공식물가지수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자물가는 전체가구의 평균소비지출액 비중을 기초로 품목별 가중치를 사용해 산출되는데 개별 가구의 소비활동은 평균적인 지출구조와 차이가 있다. 체감물가는 말 그대로 개별가계가 느끼는 소비지출액의 변동이므로 소비자의 주관적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 소득 성별 학력 등 가계특성에 따라 물가변동을 인식하거나 해석하는 능력이 다르고 이로 인해 개개인이 주로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의 변화에 민감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것을 더욱 민감하게 인식하므로 가격인상에 심리적으로 더욱 큰 가중치를 부여해 실제물가보다 체감물가를 더 높게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는 물가통계가 체감물가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생활물가나 신선식품물가와 같은 보조지표를 작성해 제공하고 있다.
생활물가와 같은 보조지표 작성해 제공
그런데 개개인이 아닌 평균 또는 대다수 가계가 느끼는 물가가 공식물가통계와 다를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 물가통계의 신뢰성이 저하되며 이에 기초한 제도설계와 정책운용 또한 신뢰받지 못해 결과적으로 의도했던 정책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공식물가통계 작성시 구조적인 측정오차(measurement error)는 분명히 존재하며 경제구조전환에 대응하는 가계소비행태의 변화는 물가통계에 내재된 측정오차를 증가시킬 수 있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이 같은 측정오차의 50% 이상은 가계가 구매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품질변화에 기인한다고 보고하며 이로 인해 대다수 소비자들이 공식물가통계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품질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물가지표를 사용하여 계산한 경제성장률 또한 실제 경제규모나 생활수준의 변화를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성장지표가 제대로 측정되지 못했다면 이를 기초로 수행되는 경제정책의 정량적인 효과의 정확성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물가변동이 가격의 순수한 변화인지 품질변화로 인한 것인지 구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품질조정을 시도하는데 품질변화를 정량적으로 산출하는 헤도닉(hedonic) 기법과 관련제품의 가격차이를 이용해 품질변화를 유추해내는 연쇄방식(chaining)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많은 국가에서 물가지표작성시 상품의 품질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한국도 헤도닉 기법을 이용한 품질조정 생산자물가지수를 작성하고 있다.
품질이 향상되면 상품가격이 오르고 이는 바로 물가통계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상승에 대응해 같은 품목군에 속한 보다 저렴한 상품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품질향상은 실제 인플레이션을 과대 추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 같은 기존의 견해와 상반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품질변화가 물가통계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물가변동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개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보다 높은 품질의 상품을 선호하는 가계들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점점 많은 소비자들은 승용차나 전자제품의 경우 유명한 브랜드의 최신 모델구입을 선호하고 프리미엄 외식이나 이미용 서비스의 이용이 일반화되는 추세인데 물가통계작성시 사용하는 구체적인 조사품목이 변하지 않는다면 공식물가통계는 실제물가의 변동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즉 전체 소비자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점차 늘어가지만 조사품목은 여전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소비행태에 기초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재화와 서비스 소비가 급증하면서 실제물가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오래전 노벨경제학상 수장자인 로버트 솔로 교수가 제기했던 ‘생산성 패러독스’를 떠올리게 한다.
정책결정자들은 끊임없이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실제로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공식통계만을 활용해 정책분석을 수행하는 아이러니를 반복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공식통계품질을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이는 실질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소비자도 물가지수 해석하는 능력 키워야
통계작성에 있어 국제적 표준을 따르고 시계열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인식하는 변화가 통계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통계는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통계를 이용할 때 어떠한 통계도 현실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정책분석 및 결정과정에서 공식통계 뿐만 아니라 현실을 보다 온전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공식통계와 체감통계의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을 파악하는 노력이 우선시돼야 한다. 또한 소비자도 공식물가통계와 체감물가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개개인의 경제환경과 소비행태를 반영해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물가지수를 적절히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