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재정체계로는 지속가능 재정 담보못해"

2015-08-19 11:59:52 게재

'증세론' 제기한 KDI, 소득세 증세 중심 세제개편안 제시

조세부담률 20%대 중반으로 … 법인세는 제외해 논란 일듯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증세론'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는 현행 재정체계로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의 급격한 진전은 생산가능인구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저성장과 함께 조세수입을 크게 감퇴시키는 반면 복지지출 등 재정수요는 증가해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정부가 추진 중인 지출 효율화만으로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따라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KDI의 생각이다.

KDI는 이에 따라 재정건전성 문제를 중장기 핵심 연구주제로 삼아 1년여간 작업을 진행해왔으며 최근 그 결과물인 '재정건전성의 평가 및 정책과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평가와 전면적인 재정개혁의 필요성, 소득세를 비롯한 세제개편방안과 함께 공적연금·건강보험 재정건전성 제고방안, 복지 및 교육재정 개선방안 등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내용들이 망라됐다. 이번 연구에는 KDI 연구위원 뿐 아니라 대학교수 등 13명이 참여했다.

"2060년 국가채무비율 50~70% 유지해야" = 먼저 김성태 KDI연구위원은 인구구조 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과 이에 따른 세입기반 약화, 사회복지 등 재정지출 증가 등을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고 현행 재정제도들이 유지되는 경우 우리나라 재정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가채무 비율을 2060년까지 GDP(국내총생산) 대비 50~70% 수준으로 유지해야하는데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것. 김 연구위원이 시뮬레이션 한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 50~70%를 유지하기 위해선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매년 1.3~2.4% 수준으로 관리해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중은 2014년 1.7%에서 올해 2.1%로 증가한 뒤 다시 줄어 2018년 1.0%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이같은 전망은 1년도 안 돼 틀어졌다. 추경편성으로 인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GDP 대비 3%로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처는 이 비율이 2060년 9%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또 김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규모를 GDP의 1~2% 내외로 유지하기 위해 조세부담률은 20% 중반으로 높이고 재량지출 규모는 GDP 대비 10% 이내로 줄여야 한다. 현재 조세부담률이 18%, GDP 대비 재량지출 규모가 13%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게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재정 전반에 걸친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비과세·감면과 세출구조조정을 더욱 강도높게 하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산하 '세제개혁위원회' 설치 제안 = 김성태 청주대 교수도 "증가하는 사회복지지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면서 소득세와 소비세 증세 중심의 세제개편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세제에서 세원 확충에 의한 세수증가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충분치 않은 만큼 세율인상 중심의 증세가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초기에는 실업급여나 연금 등 사회보장지출에 대한 기여금 확대로 충당하고 다음 단계에서 소득세 부담을 높인 뒤 본격적으로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단계에서는 소비세 증가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세의 세입기반을 최대한 확충한 다음 부가가치세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다만 법인세에 대해 조세지출 감축 등을 통해 세입기반을 확대하되 기업 경쟁력을 위해 세율인상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이번 정부에서 대통령 산하 세제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세제개혁을 주도하고 국회 입법을 거쳐 다음 정권의 출범과 함께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정치경제학적으로 최선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성명재 홍익대학교 교수는 세수기능 확충을 위한 소득세 개편방안을 내놨다. 그는 최고세율 인상보다 일정 기간 공제수준을 동결해 세원을 확충한 후 물가연동세제를 도입해 점진적으로 실효과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물가연동세제는 소득공제액이나 공제구간, 세액공제 또는 세율구간 등을 소비자물가지수 등과 연동해 조정해주는 제도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고세율을 인상하는 것보다 물가연동지수를 활용해 과세저변을 확대하는 방안이 세원 확충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시 GDP 대비 세수비중이 증가하고 그 결과 근로·종합소득세의 소득재분배효과도 증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물가연동세제 도입시 세수확충효과 커" = 부가세도 그 자체로는 역진적인 부담 분포를 보이고 있지만 부가세율 인상에 따른 소득계층별 소비와 소득변화 등 간접효과를 반영하면 지니계수가 0.01~0.02%p 낮아져 미미하게나마 소득재분배를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가세율 인상으로 확보되는 세수를 국민기초생활보장과 같이 저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분야에 활용할 경우 소득재분배 개선효과는 1.37%p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KDI 보고서가 제시한 증세 필요성과 소득세 증세 중심의 세제개편방안은 정부의 '증세불가론'뿐 아니라 야당 등이 제기해온 법인세 인상론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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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 KDI, 증세 카드 꺼내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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