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기 기자의 낙동강편지 - 2│낙동강 최상류에 자리잡은 (주)영풍 석포제련소

석포제련소 아래 낙동강에는 다슬기가 없습니다

2015-11-10 11:19:03 게재

황산 200리터 유출사고에 물고기 2만여마리 떼죽음 … "안동호가 거대한 중금속 침전지 역할"

"4년 동안 온 식구들이 마신 물에서 독극물인 비소와 불소가 기준치 서너배 이상 나왔습니다. 더 황당한 건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기 위해 농업기술센터에 샘물 샘플을 보내서 검사한 결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거죠."

2003년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귀농한 조희찬씨의 말입니다. 4년 전 봉화군에서 귀농자 지원사업으로 깊이 120m의 관정을 파주었는데 그 물에서 이런 사달이 난 겁니다.

석포제련소 2공장 바로 옆의 헐벗은 산. 20여년 전 발생한 산불이나 병충해의 영향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그 영향으로 이후 수십년 동안 목본류는 물론 초본식물조차 자라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정 굴착지점 바로 옆으로는 낙동강 본류가 흐릅니다. 강바닥과 높이 차이는 약 40m, 거리는 50m 정도 떨어져 있으니 관정 바닥이 낙동강 바닥보다 낮습니다. 낙동강 수질의 영향을 직접 받는 위치입니다.

조희찬씨는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봉화군에서 중금속을 걸러주는 특수 정수시설을 새로 설치하고 있다"며 "관정 파는 데 5000만원, 정수시설에 또 5000만원이 든다는 데 정말 답답한 노릇"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이 집만이 아닙니다. 이곳 분천 주민들은 낙동강 주변에 판 우물물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대부분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모아서 식수로 사용합니다.

비소는 천연으로는 드물게 유리(遊離)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구리·납·아연 등의 금속을 제련할 때 부산물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깊이 120m의 관정에서 비소 불소가 나오다니,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석포면 입구에 붙어 있던 석포면번영회 명의의 현수막들.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다

'영풍문고'와 충전식 건전지 '알카바'로 잘 알려져 =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구문소를 지나 경북 봉화군으로 내려옵니다. 태백시와 경계를 이루는 경북 봉화군 석포리에는 (주)영풍이 1970년부터 운영해 온 석포제련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순도 아연괴, 황산, 카드뮴, 황산동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서울에서는 '영풍문고'와 충전식 건전지 '알카바'로 잘 알려져 있지요. 석포제련소는 공장조업용으로 황산과 염산 등 10가지의 유독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 특히 황산 소비·판매량이 연간 65만톤 정도 됩니다.

낙동강 본류 양쪽에 자리잡은 이 공장에서는 △1991년 황산 탱크로리 전복 △1994년 황산 누출 △1996년 유독성 산업폐기물 불법매립 △1998년 황산 탱크로리 전복 △2002년 공장 내 저수조 바지선 폭발사고 △2008년 11월 황산 탱크로리 전복 △2013년 셀레늄 오염물질 불법배출 적발 △2014년 아연 등 중금속이 포함된 폐기물 불법배출 △2014년 11월 황산 탱크로리 전복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공장이 아무런 완충지대 없이 낙동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사소한 사고라도 심각한 생태계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6일 발생한 황산 탱크로리 전복사고를 한번 볼까요?

사고는 어찌 보면 경미했습니다. 석포역에서 태백 방향으로 나가는 지하차도 경사로에서 황산을 실은 탱크로리 트럭이 미끌어지면서 낙동강 쪽으로 전복됐습니다. 이 사고로 황산 200리터(추정량)가 낙동강 본류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전체 탱크로리에 실린 양으로 보면 일부만 유출된 겁니다.

안동호 상류 웅덩이에 폐사한 물고기들.

이 사고로 물고기들이 얼마나 죽었을까요? 당시 언론보도엔 "수백마리" "수천마리" 등으로 나왔지만 사고 직후 대구지방환경청에서 눈에 띄는 물고기만 수거해서 냉동한 개체수가 총 2만2467마리였습니다. 석포제련소 하류 20km까지 물고기들이 폐사했는데 지형관계상 수거하지 못한 물고기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봉화군 소천면 양원역 인근에 사는 전미선(봉화석포대책위원장)씨는 "황산과 물이 만나면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황산이 한번 유출되면 강 바닥의 물이끼까지 싹 녹아내릴 정도"라고 몸서리를 칩니다.

사고 당시 보름 동안 폐사한 물고기들을 동정·분류했던 채병수 박사(경북대 계통진화유전체학연구소 책임연구원)는 "부착조류 뿐 아니라 강바닥을 기면서 먹이를 먹는 저서성 물고기, 돌 밑에 붙어 살던 수서곤충의 유충까지 모두 죽는다"며 "지금까지 승부역 아래 낙동강 본류에서 '기름종개'와 '수수미꾸리' '참종개' 등 저서성 어류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에는 다슬기 분포 = 이번 취재에서 새로 확인한 건 석포제련소 하류 낙동강 본류에서 '다슬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련소 상류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다슬기가 하류에서는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가슴장화를 신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져도 한 마리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황산유출사고 당시 물고기 피해는 하류 20km 정도까지였고 봉화군 분천리 비동교 아래로는 별 영향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승부역 상류부터 분천리 비동교, 그 아래 현동천 합수지점, 더 아래 봉화소수력발전소 하류에도 다슬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청량산을 지나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 앞 여울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승부역 아래 골포천, 양원역 아래 회룡천, 현동역 아래 현동천, 봉화소수력발전소 하류에서 낙동강과 합수되는 명호천(도천)에는 다슬기들이 지천입니다. 다슬기들이 온몸으로 이 일대 낙동강의 생태 환경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문제는 수질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석포제련소 주변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량한 산들이 보입니다. 20여년 전에 큰 산불이 나서 나무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걸 보면 산불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1공장과 2공장 주변에 집중적으로 민둥산이 나타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수십년 동안 중금속 덩어리 흘려보내 = 지난해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석포제련소 작업환경 실태를 점검한 결과, 작업장 공기에서 발암물질인 카드뮴 농도가 작업환경 노출기준치(공기 1㎥당 0.01㎎)를 2.5배 초과한 0.0252㎎ 검출되었습니다. 황산도 기준치(1㎥당 0.2㎎)를 넘은 0.293㎎이 나왔습니다. 제련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카드뮴 등으로 인한 직업병 유소견자는 2012년 26명, 2013년 26명, 2014년 21명 등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으로 합수되는 석포천 하류. 영풍사원아파트 아래쪽으로 폐수가 그냥 방류되고 있다.

영풍석포제련소 하류 낙동강변에는 맹독성 비소가 다량 함유된 폐광미 더미들이 수십년째 방치되고 있습니다. 2004년 8월 내일신문이 현장취재를 통해 최초로 보도한 이 폐광미 더미에서는 1kg의 토양 안에 △납(Pb) 1154mg(기준치 300mg)△비소(As) 1563mg(기준치 15mg의 100배 이상) △카드뮴(Cd) 11mg(기준치 4mg) △아연(Zn) 3982mg(기준치 700mg) 등의 맹독성 물질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 폐광미 더미들이 석포제련소에서 배출된 것인지 아니면 (구)연화광업소에서 배출된 것인지는 규명이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비만 오면 이 맹독성 폐광미 더미가 조금씩 무너져 낙동강을 따라 안동호로 흘러든다는 겁니다.

요즘 계속된 가뭄으로 안동호 상류에는 온갖 중금속이 녹아 있는 침전물 웅덩이가 사방에서 드러납니다. 이런 오염된 뻘층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까요?

수석탐사를 하다가 이런 실태를 보고 낙동강지킴이가 된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이태규 회장은 "사실상 안동댐이 거대한 중금속 침전저류조 역할을 하는 셈"이라며 "국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만큼 국가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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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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