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기 기자의 낙동강편지 - 1 |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는 어디인가
낙동강 상류는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천연기념물 백천계곡, 고선계곡 이어주는 '낙동강 본류'에도 서식 … 울진 회룡천에서도 발견돼
"칼룽지가. 이 물고기 이름이 뭐죠?"
"레노크."
"한번 더. 정확하게." "레·노·크!"
분명 열목어였습니다. 50cm에 이르는 길이에 선명한 검은 점, 붉은 빛이 도는 늘씬한 몸매…. 2006년 6월 30일 오전 8시 30분 연해주 대탐사 첫 취재에서 아무르강 상류 '열목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수리스크에서 800km 정도 북동쪽에 있는 그라스니야르 마을, 말갈족의 후예인 우데게인들은 이 마을을 '붉은 강'이라는 뜻으로 '오롤'이라 불렀습니다.
열목어를 확인한 곳은 오롤 마을에서 배를 타고 시호테알렌산맥 쪽으로 비킨강을 4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간 지점이었습니다. 전날 사냥꾼 오두막에 짐을 풀고 강물 흐름이 약한 곳에 2개의 그물을 쳤는데, 이 그물에 열목어 2마리가 잡혔습니다. 강물은 정말 붉었고 강물 온도는 섭씨 6도였습니다.
칼룽지가는 우데게족 안에서도 몇 남지 않은 뛰어난 사냥꾼이었습니다. 그에게 다시 물었죠.
"레노크가 봄에 철쭉꽃이 필 때 상류로 올라오나?" "맞다."
"겨울이 오기 전 하류로 내려가나?"
"그렇다." "하류라면 ? 바다까지?"
"아니다. 레노크는 바다에 가지 못한다."
그날 밤, 칼룽지가는 노트북에 저장된 '열목어'와 '산천어' 사진을 정확하게 구별해냈습니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400만년 지질학적 연대 뛰어넘는 '생명화석' = 러시아 아무르강이 주 서식지인 열목어(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 IUCN Red List 취약종)가 우리나라에도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면 열목어는 서해안 수계, 정확하게는 '고황하 수계'에 사는 물고기입니다. 아무르강은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고아무르강 수계입니다. 동해안 수계에 사는 열목어가 어떻게 서해안 수계로 넘어왔을까요? 열목어는 연어나 송어처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데 말이죠.
그것은 약 400만년 전 백두산이 솟아오르면서 압록강과 아무르강 상류의 지형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백두산 융기 이후 고아무르강에 연결돼 있었던 압록강의 흐름이 서쪽으로 바뀌었고 그 때 압록강 상류에 살던 '열목어' '우레기' '곤들메기' '자치' '아무르장어' 등 고아무르강 수계의 냉수성 어종들이 서해안 수계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열목어나 곤들메기는 400만년 전 백두산 화산폭발로 서해안 수계로 넘어온 뒤 고립된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300만년 전이니 이런 물고기들은 지질학적 연대를 뛰어넘는 '살아 있는 화석'인 셈입니다.
◆기록으로만 남은 섬진강 열목어 = 열목어는 빙하기 때 종이 고정된 냉수성 어종으로 한여름에도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산간계곡이라야 살 수 있습니다.
열목어는 우리나라와 만주, 몽골, 러시아 연해주, 카자흐스탄 일대 하천에만 분포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최남단 서식지라면 곧 지구 최남단 서식지가 됩니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는 섬진강 발원지 계곡입니다.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정문기. 일지사. 1977) 122쪽에 섬진강 수계의 열목어에 관해 짤막한 내용이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임하리의 팔공산 서쪽(섬진강 상류)과 경북 봉화군 소천면 석포리, 대천리 및 고선리 부근 태백산 남쪽(낙동강 상류), 평북 강계, 강원도 홍천군, 영월군 등지에 분포한다."
현재 진안군 행정지명에서 임하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팔공산 서쪽 계곡에 '고림하'라는 마을이 있으니 팔공산-마령재-구름재를 잇는 능선 북쪽 계곡에 분명 열목어가 살았을 것입니다.
한국어도보는 일제강점기에 우치다 케이타로(內田惠太郞)를 중심으로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에서 축적한 우리나라 어류상에 관한 조사자료를 집대성한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을 쓸 때 섬진강의 열목어를 직접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근거 없이 기록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섬진강 수계의 열목어는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본 사람도 없고 현장에 가 보면 계곡 하단부가 1962년에 축조된 신암저수지로 가로막혀 열목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열목어를 복원하려면 먼저 저수지를 없애고 섬진강 발원계곡 3곳의 물이 자유롭게 만나 여울과 소를 이루며 하류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1980년대 복원한 백천계곡 열목어 = 현존하는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는 낙동강 상류입니다. 낙동강 상류에 열목어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7년입니다.
당시 거물급 학자였던 우치다 케이타로가 낙동강 상류에서 열목어를 채집했을 때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남한강 상류 정암사 계곡에 열목어가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남쪽인 낙동강에서 발견됐으니 그럴만도 했죠. 경북 봉화군 소천면(지금은 석포면으로 분리) 석포리와 대현리 백천계곡 일대가 천연기념물 74호로 지정된 것도 그때 일입니다.
그러나 이곳 대현리의 열목어도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계곡 하류에 아연광을 생산하는 (구)연화광업소가 들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백천계곡의 숲이 남벌되고 여름철 수온이 섭씨 20도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겨울에 열목어들이 월동하던 깊은 소들은 광산과 가까운 곳에 있어 수질오염의 영향을 직접 받았습니다. 산란장은 토석으로 메워지거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열목어를 보기만 하면 잡았습니다. 폭발물, 약물, 전기충격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남획은 1960년대 열목어 씨가 마를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백천계곡에서 볼 수 있는 열목어들은 1980년대 이후 주민들이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1984년 7월 백천계곡 주민들이 열목어복원회를 조직했다는 소식을 들은 호림수산양식개발연구소 백윤걸 소장이 새끼 열목어 200마리를 기증했습니다. 새끼 열목어 100마리는 백천계곡에, 100마리는 계곡 옆 현불사 연못에 방류됐습니다.
그 후 1989년 봉화농촌지도소 기술진이 현불사 연못에서 다 자란 열목어 성어 24마리를 친어로 인공부화에 성공, 1990년부터 인근 계곡에 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방류된 열목어들은 백천계곡을 비롯, 봉화군 소천면 고선계곡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열목어들은 한여름엔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산간계곡에서 지냅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고 강물 온도가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큰 강으로 내려갑니다.
백천계곡을 흐르는 병오천은 (구)연화광업소 앞을 지나 육송정 삼거리에서 태백에서 내려온 낙동강을 만납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천계곡보다 더 남쪽에 있는 열목어 서식지 고선계곡의 물도 현동천으로 흘러 소천면 소재지 현동에서 낙동강에 합류됩니다.
◆낙동강 본류가 월동지일 수도 = 그렇다면 겨울이 되면 현동에서 육송정 삼거리까지 30km가 넘는 낙동강 본류가 열목어들의 월동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열목어 이동경로를 모니터링한 결과 백천계곡의 열목어들은 대부분 육송정 삼거리 인근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류에는 아연을 생산하는 영풍제련소가 있어 열목어들이 그 아래로는 잘 안 내려가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로부터 열목어 서식지에 관한 새로운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양원역 인근 주민들은 "1999년부터 울진군 서면 골포천과 낙동강 합수지점에서 큰 열목어들을 보았다"고 일관되게 얘기합니다.
심지어 골포천보다 더 남쪽에 있는 회룡천에서 "올해 처음 열목어를 보았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열목어와 골포천 상류에 방류한 산천어를 정확하게 구별할 정도였습니다.
◆자동차길 없는 7km 구간 이동해 수중장비 투입 = 열목어들이 골포천 용소에 주로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 주민들과 함께 12~13일 이틀 동안 수중취재를 시도했습니다.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왕복 7km 구간을 래프팅과 도보로 수중촬영장비를 운반해서 접근했는데 열목어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찍 추워진 날씨 탓에 열목어들이 낙동강 본류로 내려간 것인지, 사람들의 간섭을 피해 더 상류로 올라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채병수 박사(경북대 계통진화유전체학연구소 책임연구원)는 "2014년 11월 6일 발생한 석포제련소 황산 유출사고 당시 하류 20km까지 물고기 총 2만2467마리가 폐사했는데 그 가운데 15마리의 열목어가 발견됐다"며 "백천계곡과 고선계곡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한 열목어들이 이제 서서히 낙동강 본류와 인근 계곡으로 서식지를 넓혀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낙동강 상류,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아연제련소, 열목어를 멸종위기2급 생물로 지정한 환경부, 이 세가지 삼각함수를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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