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기 기자의 낙동강편지│⑤ 낙동강 '녹조라떼'의 진실

8개 보로 막힌 낙동강, 해마다 극심한 녹조로 몸살

2015-12-03 11:34:13 게재

사대강사업 전에는 일부 구간에서만 발생

모래톱 사라지고 담수로 정체시간 길어져

사대강사업 전 경남 의령군과 창녕군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 모습. 풍성한 모래톱 사이로 강물이 교차하며 흘러갔다. 뒤로 보이는 산은 화왕산이다.


대구 화원나루에서 금호강을 만난 낙동강은 회색 멍이 든 채 부산을 향해 힘겨운 흐름을 이어갑니다. 대구 화원나루의 해발고도는 20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이렇게 작은 해발고도 차이로 부산까지 흘러가야 합니다.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에서 낙동강은 '공자의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의 도동서원 앞을 휘돌아 경상남도를 향해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도동서원은 건축사학자들로부터 '갖추어야 할 규범을 완벽하게 구현한 서원건축'이라는 평을 듣는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도동서원은 엄격한 도학자 한훤당 김굉필을 기념하여 창건되었다. 그는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연산군의 사약을 달게 받은 전형적인 사람으로 숭앙된다. 창건주는 김굉필의 외증손이며 영남학파 예론(禮論)의 최고봉인 한강 정 구였다. 그 인물에 그 건축이라고 할까?'

- '도동서원/성리학의 건축적 담론'. 김봉렬

도동서원 강당에서 본 전경. 앞으로 보이는 산능선까지 대칭을 이룬다. 낙동강 건너 있는 안산(案山)이 수월루 용마루 중심에 놓여 있고, 잠미나루 양쪽 능선도 대칭이다.

도동서원 강당인 중정당 마루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과연 완벽한 대칭을 추구하는 영남학파들의 건축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곧게 선 두 기둥 사이로 정료대, 환주문, 수월루가 일직선으로 늘어서고 기둥 밖으로는 동·서재 두 건물의 지붕이 같은 길이로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까지는 향교 건축양식을 이어받은 일반 서원들에서도 볼 수 있는 대칭구조입니다. 그런데 도동서원은 이런 엄격한 대칭 구조가 건축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서원 앞으로 보이는 산능선까지 대칭을 이룹니다.

낙동강 건너 있는 안산(案山)이 수월루 용마루 중심에 놓여 있고, 잠미나루 양쪽 능선도 대칭입니다.(왼쪽 능선은 강 건너, 오른쪽 능선은 강 이쪽편이지만) 이런 완벽한 대칭을 만들기 위해 도동서원은 남향이 아니라 북동향을 향해 지어졌습니다.

"죽음으로 도학의 기치를 세웠다" = 한훤당 김굉필은 21세에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글을 배웠고 정몽주-김종직으로 이어진 성리학의 맥을 계승한 인물입니다. 26세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사람 출신답게 홍문관 등 주로 언론 계통의 벼슬을 역임했습니다.

조광조 김안국 성세창 등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낸 김굉필은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도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유배돼 1504년 갑자사화 때 사약을 받았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난 뒤 복권되었고 이언적 이 황 정여창 조광조와 함께 '동방오현'으로 추앙돼 문묘에 배향되었습니다. 도동서원 앞에 서 있는 신도비명은 그의 생애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선생은 비록 높은 지위를 얻어 도를 행하지 못했고 미처 책을 저술하여 가르침을 남기지는 못하였으나, 능히 한 세상 유림의 으뜸 스승이 되었고 죽음으로써 우리나라 도학의 기치를 세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지만 정작 수질은 엉망입니다. 심지어 낙동강에 첫 녹조가 떴다고 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 바로 도동서원 앞 낙동강일 정도입니다.

합천보 담수 이후 같은 구간 낙동강 모습. 강물의 흐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정체수역으로 바뀌었다. 바닥이 보이던 강이 녹조가 빈발하는 곳(아래 사진)으로 변했다.

 

올해 7월 5일 경남 의령군 낙서면 낙동강 본류.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사무처장이 녹조라떼를 보여주고 있다.


녹조 물꽃 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 이 일대는 구미와 대구 일대의 오염물질을 다 받아들인 낙동강이 지형적인 영향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곳입니다. 더욱이 사대강사업 이후 합천보 담수로 강물 정체시간이 더 늘어났습니다. 녹조라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정체된 강물에 초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면 수온이 급속도로 올라갑니다. 수온이 올라가는 한낮에는 물 속에서부터 녹조 덩어리들이 뭉쳐지면서 뭉게뭉게 수면 위로 떠올라 녹조 물꽃이 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최근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녹조 문제는 고온과 축산폐수가 원인이지, 보가 원인이 아니라는 견해가 많다"며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지만 소양강댐 물은 1급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최고 청정지역인 그린란드에도 여름에 수온이 올라가면 녹조가 생긴다. 녹조라떼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그린란드를 한번 가보면 어떨까"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례든지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으로 보면 사실을 왜곡하게 됩니다. 여름철의 고온과 축산폐수 등 영양물질이 녹조의 원인을 제공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강물의 흐름을 정체시키는 보가 녹조를 악화시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낙동강을 예로 들면 상주보 상류, 강물이 흐르는 안동과 예천 구간에서는 녹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물 흐르는 안동 예천에는 녹조 없어 = 사대강사업 전에도 한여름이면 낙동강에 녹조가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매년, 상류 상주에서 하류 창원 본포교까지 거의 전 구간,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녹조가 발생한 적은 없었습니다.

담수 첫해인 2012년 여름 발생한 함안보 녹조. 녹조라떼는 이후 매년 여름마다 발생하는 단골손님이 됐다.

이런 심각한 '녹조라떼'가 나타난 건 8개의 보(댐)로 낙동강물을 막은 2012년 이후부터입니다. 그린란드에서도 녹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린란드보다 낙동강의 녹조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합니다. 낙동강은 1300만 영남권 주민들의 거의 유일한 식수원이기 때문입니다.

팔당호는 1.5ppm에 특단대책 = 만약 지난 여름 한강 하류의 녹조가 수도권 주민들의 상수원인 팔당호에서 발생했고 여기에서 간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 검출됐다면 사회적 반응이 어땠을까요?

1990년대 팔당호 수질이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1.5ppm을 넘나들었을 때 전사회적으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특단의 대책이 쏟아졌습니다.

그 뒤 팔당호 수질은 대체로 BOD 1.1~1.2ppm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수계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도 대부분 대청호(대전, 충청권), 용담호(전주, 전북권), 동복·주남호(광주, 전남권) 등 좋은 수질의 수돗물 원수를 공급받습니다.

반면 대구시는 BOD 1.6~2.5ppm, 창원시는 1.8~3.0ppm, 부산시는 1.5~2.8ppm의 낙동강물을 원수로 수돗물을 만듭니다. BOD 수치만 나쁜 게 아닙니다. 구미 아래 낙동강 은 여름에는 녹조류, 겨울에는 규조류가 뒤범벅이 됩니다. 원수가 나쁘다고 수돗물값을 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위천공단 (693만㎡)보다 큰 규모 = 요즘 도동서원 하류 낙동강변에는 855만㎡ 규모의 대구국가공단 조성공사가 한창입니다. 부산시민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위천공단(693만㎡)보다 큰 규모입니다.

낙동강 수질이 가장 나쁜 병목구간에 들어서는 대규모 공단이 향후 수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하류에 있는 부산·창원시민들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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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 글 사진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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