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양병효 대우조선해양노조 고용안전부장

"정규직 임금양보로 총고용 보장받자"

2016-05-23 10:13:43 게재

조선업 위기에는 노조도 사회적 책무 있어… 대기업노조, 하청과 함께 살길 모색해야

"1만3000명 대우조선해양 정규직이 상여금 한번 양보하면 300억원이 생긴다. 이 돈이면 100여개의 하청업체 당 3억원 꼴이다. 폐업하더라도 최소한 임금을 지원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노조 안에서 "정규직 임금을 양보해 총고용을 보장받자"며 내부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양병효(49) 노조 고용안전부장의 말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세계 조선경기의 어려움을 2년만 버티면 된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용접공으로 29년간 조선업에 몸담아 온 양 부장은 "해양플랜트는 고부가가치 노동기술집약형 산업으로 한국의 앞선 기술을 따라오려면 중국은 10년, 일본은 3년 이상 더 걸린다"며 "지금의 위기만 버텨낸다면 대한민국 해양플랜트는 확고부동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다져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 부장에 따르면 대우해양조선에서 올해 4월까지 3500여명의 하청노동자가 실직했고 해양플랜트 대부분 작업이 끝나는 10월 말까지 8000여명 추가로 실직이 예고되고 있다.

조선업엔 원청 밑에 사내하청이 있고 사내하청 밑에 '물량팀'이 존재하고 있다. 물량팀은 일용직으로 근로계약도 없이 고용·산재 등 4대 보험 가입율이 매우 낮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물량팀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물량팀 -사외-사내하청-원청직영 순으로 진행된다.

양 부장은 "정규직 노조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임금을 양보해 총고용을 보장받자"고 제안한다.

그는 "노동자들은 10년 전부터 조선업 위기를 대비해 장기적 대안을 만들자고 호소했다"며 "그땐 귀를 막고 있던 정부, 기업이 이제 와서 구조조정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 부장은 "조선업이 구조조정까지 몰린 근본적 책임은 연임 문제가 걸린 낙하산, 비전문가 경영진들이 단기실적에 매달리고 이를 방치한 정부에 있지만 모르는 것도 '죄'랄까 이를 감시하지 못한 노조에도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노조에서 선제적으로 정규직노동자 성과급, 임금인상분을 양보하고 필요하다면 6시간 노동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로 총고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프랑스에서 시행하는 법정근로시간 초과근로로 가산된 시간과 연차휴가 중 일부를 시간예치구좌에 적립하는 '노동시간 예치제'를 제안한다. 양 부장은 "초과 근로 수당 등을 예치했다 호황일 때 받던가 휴가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야간·특별근로를 줄이겠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으로 제때 납품을 못해서 적자가 발생했는데 오히려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하청업체가 폐업하면 국가가 하청노동자에게 대신 퇴직금을 지급하는 체당금을 담보로 한 '가불제'를 제안했다.

그는 "대기업 노조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양보해서 하청노동자들이 함께 살길을 모색한다면 정부와 사측도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나 대주주의 사재를 내놓으라는 사회적 여론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으로 자칫 노동운동판에서 개량주의나 야합으로 비춰지는 것에 양 부장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노조 간부나 조합원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 하면 대부분 수긍한다"며 "하지만 '총 맞는 것'을 두려워해 아직 공론화는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부터 노조 고용안전부장을 맡은 양 부장은 "떼인 돈 받아주겠다"며 사내하청노동자와 소통하며 '외주화 반대, 재하도급 금지'를 위해 노력했다. 원청노조의 감시와 개입을 통해 사내하청노동자와 물량팀이 폐업으로 체불임금 등을 떼이지 않도록 도왔다. 또한 4대 보험 가입을 독려했다. 그의 노력은 2년 동안 약 40억원 체불임금을 1만여 노동자에게 되찾아줬고 사내하청·물량팀 노동자 80~90%가 4대 보험에 가입했다.

양 부장은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로는 사내하청 직영노동자까지만 혜택이 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자리 나누기는 앞으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노조의 울타리 안에서 같이 지켜야 하는 이들을 위한 정책적 제안"이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그 밖의 범위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등 실업 문제에 따른 사회안전망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4대 보험에 가입안된 물량팀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양 부장은 "조선업 호황때 국내에서 더 이상 조선소를 지을 수 없자 중국으로 많은 조선업체들이 건너갔다"며 "약 60만톤에 달하는 중국에 있는 대우와 삼성 사업장 물량을 가져오면 최소 2년은 버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미국정부도 세무조사 등으로 압박해 애플의 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했는데 한국이라고 못할 게 없다"며 "이러한 조선업 구조조정 논의에 노조가 참여해 노동, 자본, 정부이 조선업의 미래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부장은 그의 주장이 대우조선해양노조에서 시작해 조선업 다른 현장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빠르게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양 부장은 "1999년 대우조선해양 워크아웃 신청때 노조가 동의서를 안쓰고 버티다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자 밀려서 쓴 적이 있다"며 "명분과 당위만 앞세워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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