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쌓아두는 '저장강박증세'는 구조요청 신호

2016-07-28 10:28:10 게재

동작구 자원봉사자 정리수납 계기로 복합지원

이창우 구청장 "가장 놓치기 쉬운 복지 대상"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2동 김 할머니(72) 집에 구 자원봉세센터 봉사단과 대한적십자사 봉사단 등 이웃 50여명이 모였다. 주민들은 여느 가구 방문때와 달리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커다란 자루와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동작구와 동주민센터 직원까지 가세해 집안과 마당 대문 앞을 치우기 한나절. 청소트럭 3대를 보내고야 각종 재활용품과 쓰레기에 뒤덮인 집안 윤곽이 드러났다.

서울 동작구가 물건이나 쓰레기 동물 등을 수집하는 저장 강박장애 주민에 대한 체계적 지원에 나서 관심을 끈다. 정리수납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25일 신대방2동 한 할머니 집을 치우고 있다. 사진 동작구 제공


동작구가 쓰레기를 비롯해 각종 물건이나 심지어 동물까지 수집하는 이른바 '저장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주민(호더)'에 손길을 내밀고 있다. 국내에는 '쓰레기 수집 성향'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사회문제로 인식, 대처하고 있다. 낡고 필요 없는 물건이나 쓰레기 심지어 동물까지 수집, 악취와 감염 등으로 이웃에 피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사자 역시 물건과 쓰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뿐더러 가족관계 등 파생되는 피해가 크다.

미국만 해도 전체 국민 14% 정도가 저장강박증세를 보이고 그 중 2~6%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창우 구청장은 공중보건 차원에서 전담조직이 구성돼있고 지역사회에 담당 공무원을 배치해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몇몇 사례를 통해 알려지기만 했을 뿐 대안은 전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동작구는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해결책을 찾아왔다. 자원봉사자에 정리수납 교육을 실시한 뒤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는 저소득 가정을 찾아내 환경개선을 하는 형태다. 동주민센터 복지 담당 공무원 가정방문이나 이웃 신고로 대상자를 발굴하면 종합 지원계획을 세우고 대상자를 설득, 주거환경 개선을 시작하게 된다. 지원계획에는 집 안팎 청소와 정리정돈은 물론 경제적 심리적 의료적 지원까지 포함된다. 구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물론 지역사회에서 연계 가능한 모든 자원이 동원된다.

구와 동주민센터 그리고 이웃들 관심은 증상을 완화시키게 마련. 대방동 박 모(44)씨 가정이 대표적이다. 현관부터 집 안쪽까지 옷가지가 쌓여 가족들이 잠을 잘 공간을 찾아내기도 어려운데 '다 필요하다'고 고집하는 그를 수차례 방문해 설득한 건 김현자 주무관. 천정까지 쌓인 옷가지가 무너져 아이들이 깔릴 수도 있고 생활이 불편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가족간 불화가 생길 수 있다고 설득했다.

자원봉사자 8~9명이 두차례에 걸쳐 방문해 옷가지며 아이들 장난감을 치웠더니 보이지도 않던 옷장이 나왔고 동 행정차량을 동원해 치웠다. 박씨는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복지관과 정신보건센터에서 자녀들 정서상담 병원치료 후원금을 연계했다. 김 주무관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게 된 것 같다"며 "증세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만 지원해도 성과"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자원봉사자 598명이 66가정 정리정돈을 도왔다. 구는 그 중 10%는 저장 강박장애로 추정하고 있다. 동작구는 7월부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가 전면 시행, 사회복지 전담인력이 대폭 확충되고 복지 통·반장이라는 손발이 늘어나면서 저장 강백장애 주민 지원이 한결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폐쇄적 성향에 주변 접근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장 방치되기 쉬운 복지 대상"이라며 "그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지속 방문이나 사후관리가 어려웠는데 인력과 조직체계가 어느정도 갖춰진 만큼 집중적으로 관리,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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