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
상상력의 힘이 현실로 … 49번 방북기
북한은 아직 남한엔 막연한 대상이다. '카더라' 얘기가 팩트체크 없이 난무한다.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다'부터 '전기가 없어 밤에는 새까맣다'까지 생활고에 허덕이는 북한주민 얘기가 나도는가 하면 '핸드폰 사용이 일반화돼 있다"거나 "남한 드라마를 본다" "저장장치인 USB와 탭을 이용해 시청한다"는 등의 얘기도 있다.
그러나 사실여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4.27 판문점 회담이후 평양정상회담 등 방북일정이 이어졌지만 화면에 나온 것은 평양, 백두산 정도였다. 방문자들은 "평양이 많이 달라졌다"며 10여년 전과 비교한 자평을 내놓기도 하지만 '평양의 모습'일 뿐이다.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이기범 교수가 49번의 방북기를 모아 꾸민 책이다. 많은 사진과 홍보물,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 등은 인상적이다.
이 교수는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이다. 대북협력민간단체 협의회장, 한국다문화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나간 이십 년의 기억을 다시 새기는 까닭은 한반도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예측보다는 상상력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올해 들어 다시 찾아온 봄은 냉전 구도에서 비롯된 예측이 아니라 평화공동체를 향한 상상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경험의 토양에서 자라난 상상의 힘이 이상으로 연결되고 과거는 미래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이 책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콩우유 공장, 연필공장, 어린이병원을 만든 과정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1998년 고려항공을 타고 중국 선양을 통해 순안국제공항으로 북한에 처음 들어간 이 교수는 방북이 잦아지면서 직접 자동차를 몰고 육로로 방문하기도 했다.
이 책은 북한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를 잘 다뤘다. "일 없습네다"며 다소 거리감을 두는 북쪽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과정이 매수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경계하는 이들을 비바람으로 무릎 꿇게 할 순 없다. 진정성과 진심을 전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라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 교수는 "마음의 경계를 낮추고 북녘 사람들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 경험"이라며 "상대를 체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옳은 길을 좇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느끼면서 마음을 나눈다면 남과 북은 의미있고 좋은 역사를 함께 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당 한접시를 주문할 때는 '(2인 1조로 보초를 서는)초소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쌍꺼풀 수술을 한 식당 복무원 등 여성들의 달라진 모습, 평양노래방에서 부르는 아침이슬의 반주기 영상에는 북녘에서 만든 남녘 대모장면이 나온다는 점, 북한산을 안내하는 인텔리 강사, 평양냉면의 진수를 겨루는 옥류관과 청류관의 얘기 등은 또다른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