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활성화로 코리아 프리미엄시대 열자 | ③주주권 강화

기관투자자 적극적 주주권 행사 기대

2020-03-06 11:29:36 게재

"기업 장기적 가치 높이는 기회"

국민연금 의결권 향방도 '주목'

그동안 한국 기업들의 주주총회는 '주주 없는 주총, 토론 없는 주총, 정보 없는 주총'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예년과 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주총 내실화 방안 및 5%룰 제도개선 방안이 처음으로 적용되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의 주주권 강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급격히 확산된 코로나19 사태는 상장사와 주주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주주총회가 본격화되는 3월, 상장사들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의 주총 대응 방향 및 주총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본다. 또 그동안 한국증시의 발목을 잡았던 코리아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프리미엄의 시대로 나가기 위한 방안을 찾아본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기대된다. 수탁자책임활동과 관련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진 이후 첫 번째 맞는 주총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상 5% 대량보유 보고 제도에 '일반투자' 목적이 신설되면서, 수탁자책임활동의 범위 및 세부사항이 명료해졌다.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니지만 배당, 임원보수 등 일반적인 지배구조 이슈들에 대해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 행사 및 다양한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주식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기관투자자는 소액주주에 비해 기업 내부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며 자신의투자가치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강한 유인이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장기성과와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은 기업의 리스크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가치 제고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 2302개사 중 주주총회 일정을 공고한 곳은 70% 이상이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427개사 중 이날까지 주총을 이미 개최한 곳은 11개사이며 3월 둘째 주에 주총을 개최하는 곳은 40개사다.


◆5% 룰 제도 완화 =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자들은 올해 주총에서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할 방침이다. 특히 올해는 국민연금이 외부 위탁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운용사들에 넘기면서 운용사들이 의안 분석, 주주 제안 등의 수탁자책임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외부 위탁운용사만 보유한 종목은 510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여부 및 활동을 평가해 위탁운용사 선정 시 가점을 줄 방침이어서 운용사들도 관련 조직을 보강하거나 의안 분석 역량을 키우고 있다.

먼저 국민연금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 제고에 나선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 전문성을 높이고자 운용 중인 기금운용위 산하 전문위원회를 법제화했다.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 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별로 위원 9명을 둔다. 특히 가입자 단체가 추천한 민간 전문가를 상근 전문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국내 상장사 56곳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 목적'에서 '일반 투자 목적'으로 변경하고 보다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예고한 상태다.


이윤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의 유형이 다양해질 것"이라며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은 기업의 리스크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가치 제고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수행해왔던 주총 안건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 역시 강화될 것"이라며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의무 충실 이행, 경영진의 적극적인 소통 및 대응전략,그리고 기타 주주들의 협력적 참여가 주주활동 성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목소리 커지는 자산운용사들 = 지난달 국민연금이 56개 상장사에 대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투자 목적을 변경한 데 이어 자산운용사들도 잇따라 투자 목적 변경에 나섰다. 자산운용사들은 배당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하라고 요구하며,기업가치를 심하게 훼손하는 사례에 대해 주총에서 찬반의사를 분명히 표명하겠다는 계획이다.

KB자산운용은 3일 효성티앤씨에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배당확대를 촉구했다. KB운용은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지배주주 순이익이 931억원으로 전년 대비 4.4배나 증가했지만 배당성향은 20%에서 9%로 낮췄다"며 "효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오너일가 지분이 높은 효성투자개발(비상장), 효성 등의 배당성향은 100% 이상인 데 반해 오너 지분율이 낮은 효성티앤씨·효성첨단소재·효성중공업 등은 주주환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효성티앤씨의 순현금흐름(FCF) 30%인 주당 1만2500원선의 배당을 요구했다. KB운용은 효성티앤씨·광주신세계·골프존·컴투스·KMH·SM·게임빌 등에 대해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고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예고한 바 있다.

한국밸류운용은 지난달 세방전지·세방·넥센·KISCO홀딩스에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배당성향 제고 및 중장기 배당정책 수립, 소각 등 자사주 활용 방안, 중장기 사업방향 수립 및 시장과의 소통, 시장친화적인 주주환원 정책 등을 요구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올해 초 스튜어드십을 전담할 팀장급 인력을 새로 확충하는 등 관련 부서 인원을 4명으로 늘렸다. 현재는 의결권자문사로부터 보유 종목에 대한 주총 의안 검토 리포트를 순차적으로 받고 있으며 이후 투자전략위원회를 통해 최종 입장을 정할 계획이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한국타이어 계열사인 축전지 제조업체 한국아트라스비엑스에 대해 주당 1만1000원의 현금 배당안을 주주제안했다. 한국아트라스비엑스 이사회가 내놓은 배당금은 주당 400원이다.

◆외국계 기관투자자들도 가세 = 해외 연기금 등 외국계 투자자들 또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주주권 행사 방식은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 외에도 레터, 대화, 소송, 캠페인, 위임장 경쟁 등이 있다. 경영진 제안 안건에 대한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거나 직접 제안한 주주제안(이사후보 추천)에 대한 다른 투자자의 공개적인 지지를 유도하는 방식도 사용한다. 이들은 이미 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등 지배구조 관련 안건에 대한 적극적인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대형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의 경우 2011년부터 최근까지 포츈 250 기업을 대상으로 총 9건의 주주제안이 있었으며 8건에 대해 과반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캘퍼스와 플로리다주연기금(SBA of Florida)은 효성, GS홈쇼핑, DB손해보험, 대한제당 등 국내 상장사 10여 곳의 올해 주총 안건을 분석하며 반대표를 행사할 안건을 준비하고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안건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보유 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외국계 투자회사도 속출하고 있다.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목적은 없지만 배당 확대와 비영업용 자산 매각, 지배구조 개선 등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미다.

영국계 투자회사인 에지바스톤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는 최근 프린터·복합기 전문 업체 신도리코에 대해, 실체스터인터내셔널인베스터즈는 국내 최대 유무선 통신사인 KT에 대해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꿨다. 또 다른 영국계 투자회사인 하이클레어인터내셔널인베스터스는 철강 제조 업체 하이록코리아의 지분율을 작년 9월 5.12%에서 12월 6.31%까지 높인 뒤 보유 목적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미국계 투자회사인 프랭클린리소시즈도 KB금융지주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꿨다고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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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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