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불법 강제수용" 미얀마 주민들 패소

2021-08-05 12:28:15 게재

포스코 상대로 소송, 법원 각하

재판부 "국제재판 관할권 없어"

변호인단 "긴급관할 가능" 항소

미얀마 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포스코인터내셔널(옛 대우인터내셔널)이 불법 수용했다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한국 법원의 관할권이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변호인단은 국제사법상 긴급관할이 가능하다며 항소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6부(이원석 부장판사)는 A씨 등 미얀마 국민 17명이 포스코인터내셔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제재판 관할권이 없는 대한민국 법원에 제기돼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한국기업 주도 자원개발 =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00년 미얀마 국영석유가스개발회사(모지·MOGE)와 손잡고 해상가스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포스코인터(51%), 모지(15%), 인도국영석유회사(17%), 인도국영가스회사(8.5%), 한국가스공사(8.5%) 등이 합작법인을 세웠다. 벵골만 대륙붕에서 빼낸 천연가스는 전량 중국국영회사의 자회사로 판매됐다. 이 사업은 성공한 한국의 해외자원개발 사례로 부각되기도 했다.

합작법인은 가스전을 해상에 조성하면 가스를 운송하기 위한 육상 가스터미널이 필요했다. A씨 등이 살고 있는 리카인 짝퓨 지역 땅이 적격이었다.

미얀마 수도인 양곤에서 버스로 20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군부 영향권에 있었다. 이 곳 주민들은 소수민족으로 글을 제대로 아는 이 조차 몇 안 됐다. 2009~2010년 미얀마 정부와 모지 등을 통해 토지를 수용한 포스코인터는 터미널 조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토지수용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 법률가단체에 국내 기업이 해외 개발도상국 등에 진출하면서 발생한 인권문제 연구용역을 맡기면서 짝퓨 지역 이야기가 나왔다. 2013년 A씨 등 현지 주민이 처한 상황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산하 공익법률상담소에 알려지면서 고대 로스쿨생들이 조사에 나섰다. A씨 등은 토지를 불법적으로 강제수용 당했고, 보상금이 터무니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미얀마는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있지만 사용권은 주민들이 갖고 있다. 원주민들은 포스코인터가 충분한 설명과 보상을 하지 않았고,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등의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토지를 군부가 빼앗다시피 했고, 이를 헐값에 포스코인터가 사들였다고 부연했다. 토지 강제수용에 반대하는 주민들 일부를 미얀마 군부가 구금하는 등 인권 문제도 터졌다.

고려대 로스쿨 공익법률센터는 이 문제를 한국 법원이 공익소송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보고 지원에 나섰다. 법무법인 이공이 법률대리인으로 나서면서 2016년 A씨 등은 1인당 1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 등은 포스코인터의 강요 또는 부당한 위압에 이뤄진 토지사용권양도계약은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계약이 성립됐다해도 구체적 보상기준과 산정방법 등에 관한 설명이 없는 경우로 무효라는 등의 미얀마 계약법을 들었다. A씨 등의 주장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가 당한 토지수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관할 여지는 있지만" = 한국 기업이 참여한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서 현지인들에게 보상이 적정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제기된 소송은 국제사법은 물론이고 한국과 현지법을 다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법원이 국제사법에서 규정하는 대로 재판 관할이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애초 변호인단은 미얀마 주민 일부를 한국 법정에 출석시켜 당시 토지 수용 과정에 대해 증언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소송의 실익을 뒤로해서라도 불법성에 대한 호소를 한국 법원에서 할 수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미얀마 내 군부쿠테타 이후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면서 어려워졌다.

결국 재판부는 "미얀마 국민인 원고들이 대한민국 법인인 포스코인터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인데 구체적 법률행위가 있던 장소가 미얀마이므로, 국제사법이 규정하고 있는 분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포스코인터 사무소가 서울에 있어 대한민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될 여지가 큰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토지사용권양도계약은 가스전개발사업 합작법인이 당사자로, 우리법 개념으로 보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사용권의 협의취득 내지 수용과 유사하다"며 "포스코인터 등과 사이의 양도계약 형식을 취했다고 해도 국제재판관할을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지사용권 양도계약의 체결장소와 의무이행지, 토지 소재지가 모두 미얀마이고, 강요 위압 사기 등 행위는 전부 미얀마에서 이뤄졌다"며 "대한민국에서 확보할 수 있는 증거방법은 계약서 등 서류에 불과해 한국법원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법무법인 이공의 황영민 변호사는 "이번 1심 판결은 앞으로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불법행위를 해도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없다는 사례가 될 수 있다"며 "항소심에서는 다른 판단을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황 변호사는 "토지를 수용당한 주민들에게 계약서조차 제대로 교부되지 않았다"며 "미얀마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재판부가 1심을 마무리한 데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제사법에서는 사법적 구제가 어려운 경우 긴급관할을 인정하는 방법도 있고, 대법원에서 1·2심 결과가 뒤집히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공익소송을 지원해 온 박경신 고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소송 성격은) 미얀마 군사정부의 국가적 과오를 방조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는 소송"이라면서 "토지매수 당시 미얀마에 법치주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번 1심 판결에 대해 "미얀마에서의 재판이 더 효율적이라고 해서 피고 소재지인 한국의 재판관할권을 부인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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