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도 중대선거구제 도입 '모르쇠'

2022-04-25 11:50:41 게재

광역의회 잇단 '2인 선거구' 로 쪼개기

"공천권 쥔 국회의원들 횡포가 원죄"

국회에 이어 광역의회들도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국회는 '시범실시'라는 이름으로 공을 시·도의회로 떠넘겼고, 지방의회는 "기한이 촉박하다"며 사실상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25일 전국 시·도의회 등에 따르면 6.1지방선거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이번에도 제자리걸음이다. 실제 인천시의회는 기초의원 4인 선거구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결정한 것에서 절반으로 줄였다. 획정위는 4곳으로 결정했는데, 시의회가 2곳으로 축소한 것이다.

2018년 서울시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당시 거대양당의 4인 선거구 쪼개기에 반대하는 소수정당 관계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 비례연대회의 제공


인천시의회는 4년 전에도 획정위가 4인 선거구 4개를 제안했는데 단 한 곳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준한(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선거구획정위원장은 "시민사회 희망을 반영한 4인 선거구 확대를 인천시의회가 되돌린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3인으로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사표가 늘어나면서 표의 비례성이 약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전북의 경우 의원정수가 4년 전보다 1석 늘었지만 3인 선거구는 오히려 1곳 줄었다. 3인 선거구 1곳을 새로 만들면서 기존 3인 선거구 2곳을 2인 선거구로 조정한 탓이다. 4인 선거구는 4년 전과 같이 1곳 뿐이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결정이다. 결국 시민사회로부터 "기득권 중심의 선거구 획정"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현재 4인 선거구가 한 곳도 없는 대전의 경우 획정위가 2곳을 제안해 시의회 결정을 앞두고 있다. 전체 선거구는 21개에서 19개로 줄였다. 한 시의원은 "그동안 논의과정에 시의원들도 참여했던 만큼 새 획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이 광역의회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민주당 스스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광역의원들이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본심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서울시 상황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4년 전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은 의장석까지 점거하며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일을 벌였다. 당시 획정위가 4인 선거구 7개를 새로 만드는 안을 제출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갰다. 당시 시민단체가 투표장에서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선거구 쪼개기를 강행했다.

◆민주당·국민의힘 의지 안보여 = 서울시의회는 이번에도 비슷한 결정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획정위는 4인 선거구 3개, 5인 선거구 3개를 추가하는 획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에 따라 3인 선거구는 47개에서 50개로 늘렸다. 이 역시 생색내기에 불과하지만 이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상황에서 중대선거구에 대한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기 때문에 다인 선거구를 늘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 내부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조례로 정하면 경선이 끝난 뒤에 선거구가 정해질 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곱지 않다.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이 진정한 정치개혁 의지가 있다면 조례로라도 기초의회 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확대 도입하는 모습 보였어야 한다"며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의지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쓴 소리를 했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다. 경북의 경우 기초의원 정수가 284명에서 288명으로 4명이나 늘었지만 4인 선거구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1곳 뿐이다. 부산은 선거구획정위에서 4인 선거구 10곳을 만드는 안이 의회에 제출됐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선거구획정안에 대해 국민의힘 부산시당은 "3~4인 선거구 확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민주당 부산시당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획정위가 제안한 4인 선거구를 쪼개 2~3인 선거구로 만들 공산이 커졌다. 부산은 4인 선거구가 한 곳도 없다. 경남 역시 4인 선거구를 4곳에서 6곳으로 늘리는 안이 제출돼 있지만, 도의회가 이를 손댈 가능성이 높다.

대구시는 선거구획정위 안만 보면 사실상 중대선거구제 실현에 가깝다. 기존 44개 선거구를 34개로 10개나 줄였다. 그리고 4인 선거구 4곳, 5인 선거구 1곳을 만들었다. 2인 선거구는 6곳 뿐이고, 나머지 20곳은 3인 선거구다.

하지만 실제 대구시의회에서 이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문제다. 국회에서 단서조항에 명시한 4인 선거구 1곳과 5인 선거구 1곳을 제외한 4인 선거구 6곳은 2~3인 선거구로 쪼개질 가능성이 높다. 대구시 관계자는 "과거에도 획정위에서 제안한 4인 선거구를 대부분 시의회가 2인 선거구로 쪼갰다"며 "과정은 좀 복잡하겠지만 이번에도 결국 쪼개기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 시·도의원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한 서울시의원은 "법이 아닌 조례로 중대선거구제를 해야 한다는 국회 논리는 자신들이 해야 할 과제를 지방의회에 미루는 꼴"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횡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전시의원은 "지역 국회의원들이 선거구와 지방의원 공천을 모두 결정해 통보하는 과거 행태가 지금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지 않고는 다당제나 중대선거구제 갈은 정치개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형 윤여운 곽재우 이명환 곽태영 김신일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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