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멀고도 가까운 이웃 아세안 … 2위 교역상대

2022-10-07 10:58:15 게재

외부세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세안 … 미중 무역·기술 전쟁으로 지역분업체제 불안정

아세안면을 신설하며…
위기가 닥치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며 우리나라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과 인도 등 남아시아가 재조명 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2의 무역상대국이다. 이들 국가와 협력의 강화 속에서 미중경쟁 위기 극복의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상대를 알아야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게 관계개선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내일신문은 아세안면을 신설해 매월 두차례 아세안 소식을 전한다. <편집자 주>

이선진 전 인도네시아 대사

필자가 아세안에 빠져 지낸지 20년 가까이 된다. 외교관으로서, 대학 강단에서, 아니면 글을 쓸 때 '한국-아세안 관계의 흐름과 문제는?' '아세안은 중국과 어떻게 지내는가'에 관한 주제가 가장 많았다.

한국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인가.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가깝지만, 사람 왕래가 가장 많은 이웃은 단연 아세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에는 1천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아세안을 찾았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중 아세안 사람이 가장 많다. 체류, 유학, 근로, 국제결혼 등 목적별로 구분해도 아세안 사람이 단연 1위이다. 한때 중국인이 휩쓸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하면 아세안이 1위다. 우리 마음속에 가까운 이웃은 아세안이다.

경제로 눈을 돌리면, 한국 경제에서 중국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아세안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올 1~8월 무역흑자가 가장 많은 곳도 아세안이다. 현재 1만7000여개 한국기업이 아세안에서 활약하고 있어 우리 중소기업의 세계 최대 밀집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개천절 행사에 장관만 5명 참석 | 지난 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더 웨스틴 자카르타 호텔에서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국경일 행사에서 박태성 주인도네시아대사와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 참석자들이 대형 비빔밥을 함께 비비고 있다. 이 자리에는 우리의 부총리급인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 경제조정장관을 비롯해 나딤 마카림 교육문화연구기술부 장관과 티토 카르나피안 내무장관, 바수키 하디물요노 공공사업주택장관, 부디 카르야 수마디 교통장관 등 장관만 5명이 참석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최근에는 전자 산업, 자동차 메이커, 화학 공장 및 협력사들이 몰려들고 있다. 미.중 경쟁이 계속되면, 아세안에 대한 한국 투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적 잠재력과, 투자환경의 개선, 그리고 문화적 동질성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아세안 관계가 앞으로 '이대로 쭈욱' 갔으면 좋겠다.

◆한-아세안 장래에 대한 불안

좋은 일에는 좋지 않은 일이 따라다닌다고 했던가? 한.아세안 관계에 있어서 두 가지가 불안하다.

한국을 보는 아세안 사람들의 인식 문제와 다른 하나는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아세안과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는 동아시아 경제의 지역협력체제가 흔들리는 점이다.


아세안 사람들의 인식문제는,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가 10개 회원국의 지식인을 상대로 매년 여론 조사한 결과에 나타난다. 중국과 미국에 관한 설문이 중심이지만, 한국에 관한 내용도 가볍게 들어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는 한국 기업이 밀집해 있거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 지식인들이 한국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 전부터 아세안 사람들 사이에 한국이 돈만 밝힌다는 평이 있었다. 일본을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우리가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아시아 지역협력 체제(네트워크)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에 근무할 때 한국 기업인을 만났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양가죽으로 골프장갑을 만드는 가내공업 수준의 기업이지만 생산과정은 국제적이다. 양가죽을 중국으로 보내 무두질한 다음 베트남에서 염색, 인도네시아에서 최종 가공한다. 그래야 가격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이 나온다. 이것이 지역 협력(분업) 체제이다.

이 체제는 일본이 1980년대 자본, 기술,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 체제의 중심자리를 중국에게 내주었다. 외국 투자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중국에 투자한 후 주변국으로부터 중간재 및 부품을 수입하여 가공한 완제품을 미국, EU 등에 수출했다.

중국은 후발 주자이지만 이 체제를 키우고 확대했다. 아세안뿐 아니라 한국, 중국 경제는 이 지역협력체제 속에서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고, 동아시아를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등극시켰다.

코이카(KOICA)가 지난달 16일 '2022년 라오스-베트남-캄보디아 3국 글로벌연수 지식공유확산 세미나'를 이원생중계 방식으로 개최했다. 사진은 라오스 비엔티안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연수생들이 단체 사진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미.중 무역전쟁, 기술 전쟁이 일어나면서 중국이 더 이상 중심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예로, 아세안이 5세대(5G) 통신 건설을 추진하자, 미국이 '안보위험'을 이유로 중국과의 협력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중국 기업은 아세안의 4G 건설에도 참여했고, 5G 관련 상호 협력과 부품 지원 방안을 협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중 기술 전쟁으로 아세안이 후폭풍을 맞았다. 아세안에 진출한 한국 전자 기업들은 이제까지 중국의 부자재 수입이 용이하였으나 미국이 언제 개입할지 모른다.

미중 경쟁으로 동아시아 협력 체제가 와해되고, 요사이 한국 무역에 나타나는 이변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세안의 중국 대응 전략

이 글의 두 번째 주제인 아세안-중국의 관계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제2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다. 이어 시진핑 주석이 집권해 세계 전략을 전개하고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세안이 중국의 부침(浮沈)과 외부세력에 대응하면서 사용한 전략은 아래와 같다.

첫째, 등거리 외교와 집단 공동대응이다. 어느 외부 세력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필리핀과 태국은 개별적으로 미국의 동맹이지만, 주요 이슈에 대하여는 집단으로 공동 대응하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둘째, 자신의 경제능력을 키워 어느 외세도 아세안을 만만하게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아세안은 세계화 시대 조류에 맞추어 공동협력의 초점을 경제로 맞추었고 회원국을 10개국으로 늘려 몸집을 불렸다. 이어 회원국 사이 지역통합과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아세안 공동체(Community)를 2015년 설립했다.

공동체 설립준비를 본격화하던 2006년부터 10년 동안, 정상들이 연 2회 만나서 계획의 진행상황을 점검했다. 현지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아세안 전역에 와이파이 통신망이 건설되고 국경을 넘는 화물차와 국제노선버스가 생겨났다. 이 기간 동안 아세안 역내 인적교류, 무역, 투자가 3~6 배 증가하였다. 지역통합의 성과는 해외투자(FDI) 유치에서도 나타났다. 세계 투자의 13.7%가 아세안으로 향했다(2020년). 아세안의 투자환경이 그만큼 개선되었다는 증거이다.

미국과 중국도 최근 아세안에 대하여 무역과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아세안 비중도 늘고 있다. 미.중 비동조화(decoupling)를 염두에 둔 탓이리라.

셋째, 다자(지역)협력 틀에서 지역 안정을 꾀하는 전략이다. 중국, 미국 등 강대국을 지역협력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어느 나라도 동남아에서 패권적 영향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했다. 외부세력으로 외부세력을 제압하는 전략(이이제이)이기도 하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각종 지역협력기구에 미국, 중국, 러시아, EU 등 세계 대국들이 참가한다.

다음달 11월에, 이들 정상들이 아세안에서 개최되는 APEC(태국), G20 회의(인도네시아),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캄보디아)에 참석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미정이지만 미국과 중국 정상은 참석한다. 두 정상은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와 미국 중간 선거를 마친 후 처음 만난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요약하면, 아세안의 전략은 지역 안정과 경제성장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었고, 어느 외부세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세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윤석렬 대통령도 다음 달 아세안을 방문해 국제회의에 참석한다. 이 기회에 아세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10개 아세안 회원국 정상 모두와 친교를 맺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한국과 아세안 정상들만 참석하는 한국+아세안 회의에서 동아시아 지역협력 체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의제로 택했으면 좋겠다. 미.중 비동조화 분야를 제외하고, 나머지 품목에서 지역협력 네트워크를 살려 동아시아 경제의 강점인 제조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과 아세안 현인들이 참여하는 비전 그룹을 결성하여 구체적 방안을 협의해보자고 제의해봄직 하다.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 제조업이 무너지면 미국, 일본도 감당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