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칼럼

대통령 동남아 순방과 한국판 인·태전략의 함의

2022-11-17 11:37:39 게재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학 전 국립외교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11일부터 15일까지 동남아 순방 일정을 진행했다. 취임 후 나토정상회담, 조문외교와 유엔외교 이후 3번째로 캄보디아에서 한-아세안,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가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6개월간 우리 외교의 큰 줄기는 동맹외교, 자유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 다자외교로 이어져왔으며, 이번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표되는 지역 외교의 퍼즐을 맞춰 윤석열표 대외정책의 기본틀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그런가? 위 회의들이 분명 다자외교의 장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한 외교를 다자외교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수의 국가와 만난다고 다자외교는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다자외교 또는 다자주의는 진영과 체제를 넘어 국제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진영외교를 했다. 더욱이 미국이 중국을 위시해 일단의 국가들을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가치들은 대한민국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지만, 누가 어떤 대상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다르다.

특히 체제와 진영이 다르다고 배제하고 적대세력으로 규정하면 국제무대에서의 다자주의 협력은 불가능해진다. 최근 미중 및 미러 갈등이 심화하면서 기후변화나 팬데믹 대처가 지지부진하고,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의 기능부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 반증이다. 물론 중국이 다자주의를 미국 압박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자주의가 중국 것은 아니다. 현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하기에 다자주의가 중요하다.

미국의 전위대 역할 동남아가 환영할까

인태전략은 아베 전 일본 수상이 창안했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전략으로 채택했다. 개방적인 경제통상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속내는 반중 안보협력체다.

주요 고리인 아세안 회원국들은 '아세안 중심성'(ASEAN way)을 견지하면서 이러한 배타적 전략 의도를 사실상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아세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만큼이나 불만도 크다.

윤 대통령의 연설이 아세안 중심성을 언급했지만, 핵심은 미국이 원하는 안보협력 촉구였다. 이는 아세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을 향해 미국이 꾸준히 요구해온 사항이다.

무엇보다 인태전략이라는 용어에 대륙이 없고, 대륙을 배제하고 봉쇄하는 함의를 지닌다.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인태전략과 일대일로를 연계함으로써 개방적 통상외교 성격을 강조해 동남아 국가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윤석열정부에서는 이를 버리고 미국의 전위대가 되려 한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어진 한미일의 '프놈펜 공동선언'은 한국이 중국-러시아 등 대륙을 견제하는 해양세력에 본격 동참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로 지속되는 3자틀이 이번 순방에서도 핵심이었다. 북한 도발에 대한 협력 대응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면에는 3국의 안보협력을 확대하고, 가능하다면 동맹화를 통한 대중 견제를 확실하게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을 수용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윤 대통령은 작심한 듯 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에 대해서도 강하게 공개 비판했다.

얼마 전 한국이 미국에 포탄 10만발을 수출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10월 말 푸틴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하자, 한국정부는 부인했었다. 국방부는 미국에 공급할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미국이 한국정부에 우회 수출을 줄곧 압박해왔다는 그간의 한국과 일본 언론의 보도와 연결하면 향후 어떤 상황으로 비화할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냉전 진영외교에다 속도도 너무 빨라

이번 윤 대통령의 순방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에 엄청난 부정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합리적 우려를 두고 여권은 전형적인 친중-반미 프레임으로 공격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외교에 한미동맹이 근간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미중 사이에서 줄다리기나 균형외교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륙 국가들을 적대적으로 돌리는 진영외교는 선명하지만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매우 어리석은 외교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미일을 묶어 북중러를 견제하려는 것은 전략적으로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맹목적으로 추종해야 할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실리를 포기해야 할 만큼 '가치외교'가 가치가 있을까? 더욱이 대북 문제 등 특정 영역에서의 협력을 넘어 경계가 불분명한 안보협력의 대상으로서 일본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 정부는 지금 위험천만한 신냉전 진영외교를, 그것도 너무 빠른 속도로 하고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