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분노' 튀르키예 5월 대선 변수

2023-02-13 10:56:20 게재

"정부 부실대응 에르도안 용서 못해" … 규모 7 이상 추가 강진 우려도 나와

규모 7.8의 강진으로 최소 3만3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에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드러나면서 대선을 앞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에서 발생한 대지진 이후 집단묘지에서 11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애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서 이미 2만명 이상 사망자를 낸 강진으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고 경제위기가 악화하고 있다면서 생존자들과 국민 사이에서 정부의 지진 대응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튀르키예는 오는 5월 14일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총선도 6월 18일 이전에 치러질 예정이어서 성남 민심이 선거에 어떤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1999년 강진 이후 이전 정부의 지진 대응 부실에 대한 분노에 편승해 2003년 총리가 된 에르도안 대통령이 20년 만에 지진 대응 부실이라는 같은 이유로 자신의 정치 미래에 대한 심판론에 직면한 셈이다.

분석가들은 이번 지진이 많은 사람에게 에르도안 대통령이 20년 전 집권하며 약속한 국가 개혁을 얼마나 이루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비평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기간 시민권을 약화시키고 외교부와 중앙은행 같은 국가 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해 나라를 독재정치로 몰고 갔다고 비난한다.

또 그가 경쟁자들을 약화시키고 통제권을 중앙집중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과 충성파 중용 등으로 정부의 지진 대응 능력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한다.

에르도안 대통령 본인도 지난 10일 동남부 아디야만을 방문한 자리에서 "너무 많은 건물이 파손돼 불운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신속하게 개입할 수 없었다"며 강진 발생 후 처음으로 정부 잘못을 인정했다.

정부의 부실 대응을 질타하는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원인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1999년 강진 대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군의 기능을 제한한 점을 꼽았다.

당시 위기센터장을 맡았던 투르커 에르투르크 예비역 해군제독은 "에르도안 정부가 군의 기능을 제한해 재난 대응 계획과 훈련이 없어졌다"며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모든 결정을 상부가 내려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또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진 대응 기능을 적신월사 같은 전문기관 대신 재난관리국(AFAD)에 부여하고 중요 직책에 충성파들을 앉혀 역량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한다.

또 많은 이들이 수십 년 간 누적된 부실 공사가 건물 붕괴와 사망자 발생 원인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1999년 강진 후 내진 설계 강화 법규가 생겼음에도 이후 건설된 건물이 이번 지진에서 다수 붕괴했기 때문이다.

지진 대비와 대응에서 정부의 많은 부실이 드러나면서 정권 교체를 노리는 6개 야당 연합은 벌써 이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5월 대선을 앞두고 20년간 정권을 유지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위기에 몰렸다"며 당국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지진 대응을 이유로 대선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미 지질조사국(USGS)은 11일 펴낸 새 보고서에서 "가능성은 10% 정도로 낮지만 앞으로 규모 7.0 이상의 추가 여진이 또다시 덮쳐올 수 있다"고 분석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USGS는 또 튀르키예·시리아를 합친 지진 사망자가 10만명을 넘길 확률을 26%로 2%포인트 올려 잡았다. 지진 직후 0%에서 닷새 사이 10%, 14%, 24%, 26%로 잇따라 높아진 것이다.

한편,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12일 튀르키예와 인접한 키프로스 섬의 마리프 칼리지(중고등학교) 학생선수단이 배구 시합을 하기 위해 튀르키예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을 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날 북키프로스 동부 연안 도시 파마구스타에서는 튀르키예 대지진 참사 희생자 39명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를 강타한 강진으로 이들이 묵고 있던 호텔 건물이 무너져내리면서 학생 24명과 학부모 10명, 교사 4명, 코치 1명이 모두 화를 당했다.

특히 숨진 학생들은 11∼14세 사이의 어린 청소년들이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선수단 일부는 초기에 구조됐다가 결국 심각한 부상으로 병원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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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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