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노사정 대화·타협의 정신적 기원

2023-06-16 11:12:59 게재

교황 레오 13세 '새로운 사태' 회칙

독일 노사정 합의주의는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선언한 회칙 '새로운 사태'에 정신적 기원을 둔다. 회칙은 중세부터 이어진 숙련공들의 협동조합(길드)이 무너지고 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기업가의 경쟁과 탐욕에 희생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동재산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주의도 비판했다. 노동자가 노동에 전념하는 것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사유재산의 형성이라고 했다. 모든 사유재산을 공유한다면 노동자는 임금을 아껴 투자할 수 없고 자기 자산을 활용해 생활을 향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비판하며 제3의 길을 선언했다.

정의를 지켜야 만나서 대화 가능

자본가의 인격 존중, 노동보호가 폭동이 되지 않도록 회칙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상호의존적이다. 노동자는 노동계약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자본가의 재산을 침해하고 인격을 손상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 폭력을 삼가고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폭동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노동자의 정의로운 의무다.

노동자의 인격과 노동을 존중

자본가는 노동자를 노예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하며 그리스도교인으로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노동은 인간이 노력과 정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품위를 드높여준다. 인간을 이윤추구의 도구처럼 다루거나 오직 기술이나 노동력으로 인간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종교생활과 의무를 다할 시간적 여유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자본가의 기본 의무는 정당한 임금

자본가(사용자)는 연령과 성별에 부적합한 노동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무는 정당한 임금을 주는 것이다. 정당한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기업이 임금으로 인해 파산하지 않으며 공동선을 위해 일자리 창출에 적합한 수준이어야 한다. 정당한 임금을 착취하는 것은 중대한 과오다. 노사 간에 이러한 의무들이 잘 지켜진다면 분쟁의 원인들이 제거돼 대화할 수 있다.

국가는 분배 정의로 공동선 추구

국가는 법과 제도를 균형 있게 운용해 사회의 번영과 개인의 복리를 증진해야 한다. 국가는 낮거나 높은 계층을 포용하고 공동선을 위해 '분배 정의'를 공정하게 준수해야 한다. 또 모든 계층의 시민을 공평하게 보살펴야 한다.

노사정은 하나의 사회적 유기체

교황 레오 13세의 뒤를 이은 비오 11세는 회칙 '새로운 사태' 선언 40주년 맞아 다시 회칙을 선언한다.

그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사고 팔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을 물건으로 취급해 수요와 공급으로 나누면 노동시장은 인간을 두 진영으로 분리하고 두개의 군대가 전투에 참가한 싸움터로 바꾸는 실수를 저지른다.

노사는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다. 이렇게 노사정을 사회적 유기체로 인식한 것이 유럽 노사정제도의 정신적인 토대다.

["노사관계 정부역할"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