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정치격변과 ‘또 럼’ 시대의 개막

2024-09-06 13:00:02 게재

반부패 운동의 강력 추진, 외투기업엔 영향 적을 듯 … 미중 사이 균형 ‘대나무외교’ 계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8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방문한 또 럼 베트남 국가주석 겸 공산당 서기장과 악수하고 있다. 또 주석은 취임후 첫 외국방문지로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올해 초부터 이른바 ‘불타는 용광로’라 불리는 강력한 부패척결 활동이 베트남에서 추진되었다. 그 결과 베트남 고위 관료들이 잇따라 직위를 잃고 ‘정치적 불안정’으로 여겨지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실제로 2023년 초에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 국가주석과 부총리 2인이 사임했고, 올해 3월부터 보 반 트엉(Vo Van Thuong) 국가주석, 권력서열 4위 브엉 딘 후에(Vuong Dinh Hue) 국회의장, 권력서열 5위 쯔엉 띠 마이(Truong Thi Mai) 당 상임서기, 중앙정부 장차관, 하노이시 인민위원장 등 지방정부·당 간부, 대기업 총수 등 다수의 고위인사들이 퇴진하거나 사법 처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내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국의 구성도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는 쇠퇴하고 공안부와 군부 출신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지난 7월 베트남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총비서의 서거는 베트남 투자에 관심을 둔 외국인직접투자 기업뿐 아니라 주변국들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10월 국가주석 선출, 4대 권력분점 유지 = 8월 3일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또 럼(To Lam) 국가주석을 타계한 응우옌 푸 쫑 총비서의 후임으로 선출하였다. 신임 총비서는 2026년 제14차 베트남공산당 전당대회까지 임기를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그가 최근까지 반부패 수사를 주도했다는 평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베트남 집단지도체제를 약화시키고 중국과 유사한 길로 갈 것이라는 우려도 들려온다. 특히 또 럼 신임 공산당 총비서가 국가주석을 겸직하기로 하면서 이러한 의문과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다행히 8월 26일 부이 반 끄엉 베트남 국회 사무처장이 오는 10월 국가주석을 다시 선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또 럼 총비서의 정치적 정당성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베트남은 서열 1~4위인 공산당 총비서,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이라는 ‘4대 기둥’이 권력을 나눠서 행사하는 구조를 지닌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이후 권력 분권이 특히 강조되었고, 4대 리더십 직책 간에 견제와 균형의 내부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왔다.

이런 가운데 반부패 운동을 주도하던 국가주석이 신임 공산당 총비서까지 겸직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베트남의 정치적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10월에 선출될 국가주석이 군부 출신일지, 북부 지역 이외 출신일지 등 베트남의 정치 지형에 대한 모니터링은 여전히 필요하다.

◆또 럼의 반부패 운동 추진과 경제적 함의 = 한편 또 럼 신임 공산당 총비서는 전임자 응우옌 푸 쫑의 핵심 유산인 반부패 운동을 ‘가차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석상에서 표명했다.

그는 지난 8월 14일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부패 및 부정의 척결과 예방, 방지를 강조하면서, 부패를 척결해야 사회·경제적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2024년 상반기 6개월 동안 부패·부정행위로 적발된 사례가 150건을 넘었고, 그중 형사 처벌된 건수는 50건 이상이었다.

반부패 운동의 강력한 추진은 또 럼 총비서에게 정치적 정통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2026년 제14차 공산당 전당대회를 대비해 잠재적 도전자를 견제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을 본인 주변에 모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부패 척결 운동을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하지만, 베트남이 외국인직접투자에 의존하는 경제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베트남 공산당 입장에서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여 외투기업이 베트남을 등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단기 복지부동 우려, 장기 혁신 가능성 = 사실 또 럼 총비서는 권위주의자이지만 전임자인 응우옌 푸 쫑 총비서와 달리 사회주의 이론가는 아니다. 그는 경제성장을 통해 베트남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공산당의 정통성과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자이다.

따라서 사기업에 대한 단속이나 ‘공동번영’과 같은 이념적 의제를 추구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경제 정책을 직접 추진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우려스럽지만, 반부패 운동이 베트남 내 만연한 부패 문제를 해소한다면 국민의 삶과 경제체질은 개선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베트남 공무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복지부동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지출과 투자허가가 지연될 수 있고 일자리도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부패의 근절은 기업의 생산 활동에서 자원배분의 왜곡을 줄이고 혁신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투명한 법·제도의 집행은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에도 기여한다. 베트남 현지에서 포스코를 포함한 다수의 한국기업이 ‘투명 경영’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부패와 부정’은 현지 활동의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의 부패 척결활동이 실용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실용주의자 ‘또 럼’ 8월 방중, 9월 방미 = 한편 실용주의자인 또 럼 총비서의 대외정책은 응우옌 푸 쫑 총비서의 ‘대나무외교’를 계승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모든 글로벌 행위자와 우호적 관계를 추구할 것이다.

비록 공산당 총비서로 취임하자마자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지만 이 점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 협력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럼 총비서는 지난 6월에 베트남 국가주석 신분으로 마크 내퍼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와 이미 회동을 했고, 양국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이행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또한 오늘 9월 UN 총회 또는 미래정상회의에 국가주석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며, 이 자리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나무 외교는 흔들림 없이 추진될 전망이다.

다만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또 럼 총비서 겸 주석의 중국 방문이 가지는 의미를 양국 간 경제협력 관점에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물이 경제적 측면에서 베트남이 중국에 경도될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베트남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로 함과 동시에 안보·국방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협력, 무역, 투자 관련 14건의 MOU 문서에 서명하였다.

특히 일대일로 차원에서 라오까이-하노이-하이퐁 표준궤도 철도 프로젝트를 포함한 양국 간의 철도협력은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경제 환경 속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또 럼의 중국 방문과 철도 협력의 함의 = 1970년대 후반 양국은 국경 전쟁을 치렀고, 여전히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분쟁 중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양국이 철도 연결을 망설이는 것은 당연했다.

현재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 북부 산업 중심지인 하노이까지 두 개의 철도 노선(라오카이-하노이-하이퐁, 랑송-하노이)이 연결되어 있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중국의 고속철도와는 선로 궤간이 달라 승객은 물론 화물도 열차를 바꿔 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2024년 들어 7월까지 중국-베트남 철도를 통해 6800여개의 컨테이너가 운반되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배나 증가한 규모이다.

2023년 12월 시진핑 주석은 베트남 방문 계기에 베트남 철도 개선에 대한 지원을 제안했고, 중국과 베트남은 철도 협력 강화에 관한 두 건의 MOU에 서명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한 팜민칭 베트남 총리가 베트남 철도에 대한 재정 및 기술 지원 요청과 함께 중국 철도회사를 찾았다. 이번 8월에 중국을 방문한 또 럼 베트남 총비서 겸 국가주석은 양국 간 서명된 합의의 이행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철도 연결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보도에 따르면 헝바(Hung Ba) 베트남 주재 중국대사는 기존 철도 노선인 라오카이에서 항구 도시인 하이퐁까지와 랑손에서 하노이까지의 노선은 개량하고, 중국 둥싱시(东兴)에서 출발하여 베트남 몽까이를 거쳐 하이퐁까지 해안을 따라 신규로 선로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3개 노선 700여 km가 완공되면 중국과 베트남 간 물류 흐름이 더욱 용이해질 전망이다. 거기에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1500여 km에 이르는 고속철도가 중국 자본에 의해 건설된다면 중국과의 인적교류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폭스콘을 비롯한 다수의 탈중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하면서 중국산 중간재 수입이 증가한 상황에서, 양국 간 물리적 연계성의 개선은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경제적 의존도를 높이고 양국간 공급망 연계 수준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결국 대미 수출에 장애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

◆공급망 다각화위해 베트남 중요성 커져 = 지난 8월 1일 미국이 베트남을 ‘비시장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거부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물론 여전히 베트남은 생산수단인 토지를 국가가 소유 및 통제하고 있고, ‘관영노조’가 단체 교섭에 관여하며 임금 인상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 럼 총비서는 9월 방미 계기에 미국 대통령과 관료들을 만나 ‘시장경제’로의 지위 변경을 촉구하겠지만, 미국 입장에서 경제안보에 더 큰 방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한국기업과 정부는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기 보다는 공급망을 한국과 주변국으로 다각화해야만 베트남의 가장 큰 수출시장인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설파해야 한다.

또한 서구사회와 한국이 베트남을 공급망 다각화의 후보지로 여긴다면, 베트남이 중국의 일대일로를 통해 경제적으로 예속되지 않도록 한국과 일본, 아세안 회원국이 함께 연계성 개선에 관한 협력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베트남의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아세안 회원국과 베트남간의 교량 역할을 수행하면서 아세안 전역을 한국의 공급망 후보지로 활용하는 것은 안정적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충분히 고민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