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은행업계 휘저을 메기 키우기

2023-07-10 11:34:18 게재
양재찬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

기업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경영이론으로 흔히 '메기효과'가 거론된다. 이는 과거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운송할 때 수조에 청어의 천적인 메기를 넣은 데서 유래한다. 청어들이 메기의 공격을 피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여 싱싱함을 유지했고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는 가설이다. 치열한 경쟁 환경이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꾀하는데 유익하다는 논리다.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설파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견해와 상통한다.

정부가 5개월여 작업 끝에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시중은행의 손쉬운 이자장사에 기반한 성과급 잔치가 논란이 되자 윤석열 대통령이 과도한 과점 체제라고 질타함에 따른 조치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인터넷전문은행·지방은행의 신규 인가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들에게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메기' 역할을 맡긴다는 것이다.

출전 선수를 늘린다고 경쟁이 활발해지며 과점체제가 깨질까. 5대 시중은행 '신국하우농'(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 대출의 63.5%, 예금의 74.1%를 보유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점유율 50%대보다 훨씬 높다.

'조상제한서' 5대 은행 시절만 해도 독과점 폐해가 심하지 않았다. 동화은행 대동은행 평화은행 등 나중에 다른 곳에 통합됐거나 퇴출된 은행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국책은행을 합친 전체 은행수는 34개였다. 지금은 그 절반인 17개다. 국내총생산(GDP) 및 금융거래 규모가 커졌는데 은행수는 되레 줄었다.

'조상제한서'보다 공고해진 '신국하우농'

은행 과점체제는 역설적으로 외환위기로 대형 은행들이 동반 부실해지며 시작됐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으로 합쳤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통합 국민은행으로 합병했다.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을 인수한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쳐 통합 신한은행이 됐다. 하나은행은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과 합친 데 이어 외환은행도 합병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규 은행 진입을 막아 놓은 사이 대형 은행들끼리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놀이로 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4대 천황' '5대 천황'으로 불릴 정도였다.

'신국하우농'의 10년(2013~2022년)간 이자이익은 250조원에 이른다. 특히 기준금리가 본격 인상된 지난해 급증했다. 2021년 30조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36조3500억원으로 불어났다.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대출금리는 빨리 큰 폭으로 올린 반면 예금금리는 천천히 소폭 조정에 그친 결과다.

더구나 이들 은행 수익은 이자이익에 집중돼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은행의 총 영업이익 대비 이자이익 비율은 평균 88%. 지난해에는 94.3%에 이르렀다. 미국 은행의 5년 평균(70%)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 은행들은 이자이익 외에 투자자문 자산관리 등 업무로 상당한 수익을 낸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전환 의사를 밝혔다. 시중은행이 새로 생기면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1년 만이다. 하지만 대구은행이 메기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다. 대구은행 지점수는 202개로 국민은행의 1/4도 안된다. 경상도 외 지역 지점은 9개에 불과하다. 자본금과 대출 규모도 5대 시중은행과 크게 차이 난다.

2017년 출범한 인터넷은행도 처음에는 메기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컸다. 소액 신용대출 등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지고 모바일뱅킹이 편리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판을 흔드는 금융상품이나 경쟁과 혁신을 통한 과점 균열은 나타나지 않았다.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등 3개 인터넷은행의 점유율은 2%대다.

은행권 경영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 초기 중점 거론됐던 스몰라이선스(은행업 인가 세분화)나 벤처·부동산·소상공인 대상의 챌린저뱅크(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은 미뤄졌다. 증권·보험사 등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후 검토로 밀렸다. 금융소비자 위에 군림하며 이자놀이를 해온 기득권 카르텔을 종식시킬 '킬러 대책'은 없다.

'기득권 카르텔' '킬러 규제' 여전

정부가 은행권 과점 구조를 수술대에 올린 것은 경쟁체제를 작동시켜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국내 은행들은 제대로 된 주인이 없다. 퇴직 관료들의 놀이터로 경쟁도 혁신도 하려 들지 않는다. 주인 있는 은행이 출현해야 진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메기효과도 극대화할 것이다.

은행수를 늘리는 만큼 자본력을 갖추고, 주인도 있는 메기를 투입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래야 책임경영과 탈(脫)관치,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춘 융복합 금융, 금융기법의 선진화가 가능해져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60년 넘은 금융산업 분리 원칙을 완화하면서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 은행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다.

양재찬 가천대 겸임교수